2014년 8월 A씨는 승합차를 운전하다 경부고속도로 갓길에 멈춰 서있던 8t 화물차를 들이받았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 B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A씨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보험회사 11곳에서 생명보험 25건에 가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 계약의 수익자는 A씨, 피보험자는 B씨로 A씨에게 돌아갈 보험금은 총 95억여원이었다. 검찰은 A씨가 B씨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이고 안전벨트를 풀어두었고, 사고 직전 상향등을 켜 화물차의 위치를 확인한 점 등을 들어 보험사기로 봤다. 하지만 2017년 대법원은 A씨의 졸음운전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과 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A씨가 수면유도제를 먹이거나 안전벨트를 풀었다는 증거가 없고, 월 360만원의 보험료를 지출할 정도로 수입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계약 다 이해 후 서명" 판결에 속 타는 보험사들
하급심 판결에 불복한 보험사들은 “B씨가 약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했다”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 남은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B씨가 평소 병원에 가거나 콜센터에 전화할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정황들을 내놓는 것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약관은 한국인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외국인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서명을 했을지 의문”이라며 “아내가 죽은 뒤라 확인하기도 어려워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형사 사건은 증거가 엄격하게 판단돼 무죄라 하더라도, 민사 사건에서는 계약 효력을 다퉈볼 여지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B씨의 한국어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 보니 법원 최종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은 존재한다. 실제로 B씨가 한국에 온 지 몇 달밖에 안 된 시점에 체결된 라이나생명 계약은 무효라고 본 판결도 있다. "B씨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보험 계약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A씨가 시키는 대로 서명했을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흥국화재도 계약 절차 당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1심에서 승소한 상태다.
보험금 싸움 단골 손님, '자필 서명'
다만 “본인 동의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방식의 대책만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게 업계 목소리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자필 서명이 매번 문제 되다 보니 계약 당시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절차가 복잡해지면 보험이 꼭 필요한 이들이 피해 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편 A씨 사건 판결문에는 “아내 B씨가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험사가 통역 서비스를 지원했어야 한다”는 대목도 등장하지만, 보험사 관계자들은 “통역까지 해야 한다고 하면 비용 지출이 부담스러워 아무도 외국인에 대한 보험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짚었다.
대신 보험사기를 조기에 발견해 신속하게 대처하자는 방향에 대해서는 업계와 금융당국 모두 공감하고 있다. 10일 보건복지부, 경찰청, 금융감독원, 보험협회 등은 보험조사협의회를 열고 중복·과다 보험 방지를 위한 인수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사망담보 가입금액과 소득, 납부 능력을 보다 엄격하게 들여다봐 심사를 강화하자는 게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