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유럽의 인플레이션에 기업 이윤이 기여한 정도가 거의 절반에 달했다. 2022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나타난 인플레이션의 45%는 기업의 이윤 추구 때문에 발생했다는 뜻이다. 이어 에너지ㆍ원자재 등 수입 물가 상승이 40% 영향을 미쳤고,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 중앙은행(ECB) 총재도 지난 5월 “일부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상황에서 자신들의 비용이 늘어난 것 이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해 수익을 끌어올렸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나 경제학계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되던 그리드플레이션이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근원물가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0.6%로 정점을 찍은 후 6월에 5.5%로 2개월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ㆍ식료품 제외)는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연속 5%대를 유지하고 있다. 6월에는 5.4%로 전월(5.3%)보다 소폭 상승했다. 미 Fed가 주목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도 지난 5월 4.6%로 전월보다 0.3% 올랐다. 휘발유 등 에너지 물가가 급락했는데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그리드플레이션을 부정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기업의 이윤 증가가 물가를 부추겼다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게 주된 근거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식품 공급업체나 소매업체가 폭리를 취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자 저스틴 울퍼스도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탐욕 탓으로 돌리는 건 마치 비행기 추락 원인을 중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도 해외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를 기록하는 등 주요국에 비해 빠르게 안정되고 있지만 근원물가가 4% 안팎의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최근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라면값 인상 자제를 요청하면서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부가 기업의 가격 정책에 개입하기 전에 실제 물가 상승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불황 직후엔 기업 이윤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과거에 비해 과도한 수준인지, 부문별로 경쟁의 정도가 약화된 영향인지 등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시작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