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해 5월~올 4월 320일 수도권의 또 다른 대형병원 응급실을 차지했다. 그의 아들은 갖가지 증상을 대며 진료를 요구했고, 11개 과목 전문의가 진료했다. 의사가 나서긴 했지만 응급성 질환은 없었다. 그의 아들은 진료나 처치마다 트집을 잡아서 동영상을 찍고 녹취해 보건소·경찰에 신고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A씨가 의료급여 환자라 응급실 의료비 부담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집에서도 돌보기 힘드니 응급실에 버틴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결국 병원이 전원이행ㆍ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면서 ‘응급실 1년살이’가 끝났다. A씨는 요양병원을 거쳐 두 달 만에 또 응급실 병상을 차지했다.
최근 중증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가 사망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중앙일보는 응급의료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수도권 대형병원 응급실 4곳을 현장 취재했다. 이와 별도로 1~3차 응급센터장 20명과 119 구급대원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현장에선 ‘응급실 뺑뺑이’의 주요 원인으로 응급실 과밀화를 꼽았다. A씨 같은 비(非) 응급 환자가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작 중증 응급 환자가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응급실은 평일 낮인데도 북새통을 이뤘다. 진료실 밖 30여개의 의자가 환자와 보호자로 가득 찼고, 일부는 링거를 달고 서 있었다.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 구역은 다 경증환자다. 사실 외래 진료를 받아도 되는데 검사나 입원 날짜가 늦게 잡히면 빨리 당기려고 응급실에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토요일인 지난달 10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선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휴일ㆍ야간 문 여는 소아청소년과 병ㆍ의원이 줄면서 소아환자가 응급실로 몰렸다. 5개월 된 아기를 안고 온 보호자는 “새벽 1시쯤 열이 39.5도로 올랐다. 아침에 동네병원에 갔더니 편도선이 부었다며 응급실에 가서 추가 검사를 하길 권했다”고 말했다. 혈액·엑스레이 검사 결과 병명은 감기였다. 이날 0시~밤 9시(21시간) 이곳을 찾은 환자는 107명. 응급환자는 중증도 분류 기준인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에 따라 1~5단계(1,2단계가 중증)로 나누는데, 5명만 KTAS 2단계, 나머지는 3~5단계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문의는 중환자를 보고 있고, 전공의들은 밖에서 경증 환자 20명을 보고 있으면 119에서 전화가 와도 받기 어렵다”라며 “응급한 중환자는 어떻게든 받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주취자가 난동을 부려 경찰이 오고 난리가 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조유환 분당서울대병원 센터장은 "각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적절한 병원으로 '매칭'이 되는 게 제일 이상적인데, 사실 우리나라에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의료 정책이 접근성을 높여 환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접근성을 제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응급실을 찾은 비응급 환자에게 비용을 더 부과하는 식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