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처음 등장한 건 1961년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뉴저지 공장에 ‘유니메이트’를 도입하면서다. 당시엔 ‘로봇이 뭘 하겠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기우였다. 유니메이트는 무거운 장비를 옮기는 건 물론, 용광로에서 나온 금속 부품을 식히거나 연마하는 등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을 척척 해냈다.
로봇은 이제 사람을 공장에서 ‘내쫓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최첨단 설비를 갖춘 삼성전자 경기도 평택캠퍼스 반도체 라인이나 LG전자 창원 스마트파크 등에는 생산 인력이 없다. 유지·보수나 관제 인력만 드문드문 돌아다닐 뿐이다. 스마트팩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로봇·인공지능(AI)·이동통신 기술 등이 조화를 이루며 공장 전체가 하나의 몸처럼 손발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장의 모든 상황을 예측해 대응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필요하다.
[혁신창업 인터뷰] 〈51〉 장영재 다임리서치 대표
스마트팩토리서 ‘조물주’ 역할하는 기술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길이 너무 막힐 때가 있지요. ‘다른 길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내비게이션을 믿을 수 있을까’ 고민도 하잖아요.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너는 이쪽으로, 너는 이쪽으로 가’ 정리해주면 각자 원하는 목적지에까지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공장도 마찬가지예요. 많게는 1000여 대의 로봇이 함께 일하는데, 이들의 경로와 목적지를 조정해 혼잡과 정체를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다임리서치는 AI 강화 학습을 통해 공장의 상황을 로봇 스스로 인지하고,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공장이 돌아가도록 하는 ‘자율제조’ 최적화 기술을 갖고 있다. 자동화 단계에선 특정 조건에서만 공장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지만, 스마트 단계에선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공장이 스스로 대응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공장 운영 최적화 분야에서 세계 톱
스마트팩토리가 늘어나면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아졌다. 장 대표는 “2차전지 기업들이 국내·외에 공장을 늘리고 있는데 ‘생산량이 계획에 못 미친다’고 찾아온다”며 “자동차·반도체 등 글로벌 선두주자가 있던 산업과 달리, 2차전지는 한국이 갑자기 1등이 돼 버렸다. 공장을 디자인하고 자동화 시스템 구조를 갖추는 등 체계화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기업 입장에선 공장 투자비 절감 효과
다임리서치와 협업하고 있는 포스코DX의 윤석준 로봇사업추진반장(상무)은 “강화 학습 기반으로 최적화를 잘하는 게 다임리서치 솔루션의 강점”이라며 “예컨대 무인운송로봇(AGV)이 100대 필요한 현장에서 80대 만으로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어 투자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일고 기대했다.
두 회사는 현재 AGV 종합관제 시스템 구축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올 하반기 제철소와 그룹 계열사 내 물류 이송에 함께 개발한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될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전 세계 스마트팩토리 시장 규모가 지난해 862억 달러(약 114조원)이었는데, 2027년에는 1409억 달러(약 185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임리서치에 투자한 최동열 스톤브릿지벤처스 파트너는 “글로벌 반도체 공장들도 현재는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라 로봇이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트래픽이 잦아진다”며 “다임리서치는 AI 기술로 사람의 개입 없이 문제를 푼다. 세계적으로 독보적 기술이고, 반도체 톱 메이커들의 숙제를 해결할 수 있어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미국 마이크론 근무하면서 연구 실마리
“자동화가 가장 잘 돼 있다는 반도체 공장도 문제가 잦았어요. 수십 명의 사람이 종일 로봇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직접 가서 로봇을 옮겨야 해요. ‘이게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로봇끼리 알아서 움직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연구의 실마리였죠.”
2010년 KAIST에 부임해선 스마트팩토리 최적화를 위한 연구 기술을 축적해 나간다. 또 산업계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산학협력 연구도 적극적으로 맡았다. 하지만 기업체에 좋은 기술을 이전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 장 대표는 “상당수 기업이 SW를 외주화하는 게 문제였다. 차라리 직접 SW 회사를
창업해 서비스를 제공하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2020년 제자인 황일회·황설·홍상표·박진혁 박사와 함께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네 제자와 창업…“혁신 이끌자” 설득
창업 멤버이자 현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은 황일회 박사는 “기업에 기술 이전을 한 뒤엔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며 “그때 ‘우리 손으로 좋은 기술, 좋은 제품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장 대표의 말에 크게 공감해 창업에 합류했다”고 돌이켰다.
“요리 잘하는 것과 식당 경영은 달라”
그러면서 그는 경영 현장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장 대표는 “학교에서 연구하고 산학협력을 하는 것과 실제로 사업화를 하는 건 다르더라. 모든 걸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며 “회사 대표를 맡고 있지만, 가장 큰 역할은 영업담당이다. 기술에 대해 직접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 고객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창업 초기엔 영업이 ‘사업의 꽃’”이라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국내에서 연구개발(R&D) 창업이 활성화하기 위해선 교원 창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공대 교수는 창업을 해봐야 한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대학에서 교수 창업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내 기술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박수받는 데 그친다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에디슨처럼 산업의 흐름 바꿔야”
“‘자연과학은 돈을 투자해 지식을 만들고, 공학은 지식으로 돈을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토머스 에디슨이 성공한 건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에 머물지 않고 발전·송전·배전 시스템을 만들어 전기 혁명을 이끌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백열전구를 만든 연구소는 여럿 있었지만, 산업을 바꾼 건 에디슨뿐이에요. 산업은 학문보다 더 빠르게 갑니다. 사람이 돈을 쓰는 기술이 가장 필요한 기술이거든요.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할 때도 ‘투자를 얼마나 받았나’ 같은 기술 가치를 우선 판단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