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마주할 첫 과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과 관련한 딜레마 상황이다.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기세를 몰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강화하며 한국에 동참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러시아는 강하게 무기 지원 반대 압박에 나설 수 있다.
“러와 소통할 외교공간 미리 마련해야”
한국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줄곧 “전쟁 중인 국가에는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포탄·탄약 등 상대적으로 비축량이 넉넉한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이 이어졌고, 결국 폴란드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지원에 나섰다.
바그너그룹의 반란에 이어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으로 전황이 기울 경우 푸틴이 벼랑 끝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은 그동안 핵전쟁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러시아발 핵 리스크 고조는 북핵 문제와도 직결된다. 러시아가 핵 위협을 고조시키거나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북한은 이를 방패막이 삼아 핵실험 고도화는 물론 핵 사용 위협 수위를 높일 명분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바그너그룹 무장 반란 사태와 관련해 모든 정보 수단을 동원해 정세 분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위 당국자는 28일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프랑스·베트남 순방 직후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긴급 초동 보고를 받았다”며 “대통령실에서 관련 부처에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국정원의 해외 정보 파트와 외교부의 외교 채널, 미국과의 정보 공유 채널 등을 총동원해 러시아 내부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황 변화 추이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지시한 구체적 분석 대상은 ▶푸틴 리더십 리스크 ▶우크라이나 대반격 등 전황 변화 ▶대러 정책 재검토 필요성과 한·러 관계 영향 등 세 가지 범주라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했던 바그너그룹의 반란은 단순히 러시아 내부의 해프닝을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사회의 안보 지형 전반에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라며 “지금 당장에 눈에 보이는 영향은 제한적이겠지만 불똥이 어디로든 튈 수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그 여파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적인 긴박함과 달리 정부는 바그너그룹 반란 사태와 관련한 공식 입장 표명은 최소화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사태는 러시아 내부적으로 발생한 일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이를 평가하거나 입장을 내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대외적인 평가는 최대한 자제하되 내부적으론 그 여파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그너그룹 반란 사태에 대한 정세 평가와 대러 정책 방향 설계는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다음 달 11~12일) 참석과도 맞물려 있다. 여권 고위 인사는 “윤 대통령은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나토의 공동성명 도출 과정에 참여하진 않지만, 한국의 확대된 외교적 입지를 고려할 때 나토 회의 전까지는 한국의 대러시아 외교 전략을 마련해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란, 김정은에게 충격·불안 안겼을 것”
바그너그룹 반란 사건은 3대 세습으로 독재 체제를 이어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충격과 불안을 안겼을 수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최고 권력이나 군사적인 문제와 연관된 사안의 경우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권력 유지를 위한 근본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 왔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은 사회 엘리트층을 대상으로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부대의 무단 이동이나 무장 반란과 관련한 모든 변수를 차단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