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목의 수위를 높여가던 한중관계에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한국인들을 격앙시켰다. 비슷한 시기 자국 홍보 목적 행사에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만 초청하기도 했다.
6월 들어 미중 관계에 돌파구가 될 만한 계기가 마련됐다. 블링컨 장관이 19일 미국을 찾아 카운터파트인 친강(秦剛) 외교부장뿐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공산당 내 외교 총괄인 왕이(王毅) 정치국 위원을 잇따라 만난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블링컨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 미국의 기본 입장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최악으로 치닫던 미중 관계가 바닥을 친 것이란 분석들이 나왔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 변곡점을 지나 양국 관계 회복으로 방향을 튼다면 어떤 원인이 작용한 것일까. 국제정치적, 경제적으로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중동으로의 회귀(return to Middle-east)’라는 것이다.
지난해 중동 지역 최대 이슈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곧이어 벌어진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탈환이었다. 중국을 긴장케 하는 뉴스였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접경 지역인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 독립 세력과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미국에 대해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나면 어떡하냐’는 볼멘소리가 중국 외교 수뇌부로부터 터져 나왔다.
아프간 철수는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미국은 2010년대 들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내걸고 그간 중동에 둬온 전략적 무게중심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왔다. 한마디로 중국 봉쇄 전략이었다.
2023년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중동에서 적극적인 외교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3월 베이징에서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중국의 중재로 이뤄졌다. 원수처럼 대립해 왔던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맹주국을 중국이 손잡게 만든 건 미국에게 일대 충격이었다. 최근 중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미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은 최근 사우디와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합의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대표적 친미 국가였지만 기자 암살 의혹에 대한 미국의 비난 등으로 관계가 틀어졌다. 미국 입장에선 사우디가 자국에 대해 일시적 몽니를 부리는 게 아니라 중국을 자신의 대체재로 인식하게 될까 두려워할 것이다.
중국은 중동의 고질병이었던 아랍-이스라엘 간 대립에도 손을 뻗쳤다. 아랍 국가들의 지지를 받는 팔레스타인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팔레스타인이 1967년 전쟁 이전의 국경을 근거로 국가를 수립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야 한다는 아랍 쪽의 주장을 지지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중재하고 있던 미국에 한 방 먹인 것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파기했던 이란과의 핵 합의 협상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친중 국가인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해 중동에서 확산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줄여보겠다는 포석이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국이 중동에서 유지하던 압도적 세력을 잃지 않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확실히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대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동에서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했다가 다시 중동으로 무게중심을 회귀시키는 셈이다. 압도적인 세계 패권국도 두 지역 이상을 동시에 다스리기는 버거운 법이다.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도 유럽 대륙에서 독일과 러시아가 팽창하자 이에 대적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에, 동아시아를 일본에 맡기고 자신의 세력을 거둬들였다.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의 관계에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질 수 있다. 한중 관계는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 강도를 높여왔고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대중 관계는 경직돼왔다. 급기야 싱하이밍 대사의 노골적 발언까지 나왔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25% 내외에서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