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감사원의 감사 내용에 따라 경찰청·질병청·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아동의 소재·안전 확인을 위해 전국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먼저 감사원이 파악한 미신고 아동 2236명(2015~2022년생)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추후 조사 대상을 넓힐 계획이다. 이 차관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아동이 출생신고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의료기관의 출생기록이 지자체에 자동 통보되는 ‘출생통보제’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산모를 지원하는 ‘보호출산제’가 조속히 도입되도록 관련 부처,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경찰, ‘냉장고 영아시신’ 친모에 영장
복지부는 지난 4월부터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만 2세 이하 1만1000여 명에 대해 아동학대 여부를 전수조사했다. 지난 2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20개월 남자아이가 학대 끝에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복지부의 조사 대상은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아이로 한정돼 수원 두 아기같이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남았다.
사각지대의 ‘유령 아동’은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복지부에 대한 정기 감사에서 위기 아동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이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 건 일곱 자리 ‘임시신생아번호’였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생후 12시간 이내에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한다. 출생 직후 아기들은 주민번호가 없기 때문에 접종 시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일곱 자리 ‘임시신생아번호’를 받는다. 병원에서 태어난 수원 두 아기도 이 번호를 받았다. 이 번호에는 아이의 출생일·성별·출생병원·보호자 인적사항이 함께 기록되고, 이후 보호자가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로 자동 전환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임시신생아번호가 (주민번호로 전환되지 않고) 아직 있다는 건 출생신고가 안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2015년에서 2022년 사이 태어난 아기 2236명의 임시신생아번호가 유지되고 있었다.
유기 의심 사례도 발견됐다. 감사원이 화성시와 함께 조사한 사례에서 2021년생 아이를 출산한 보호자가 “아이를 익명의 제3자에게 넘겼다”고 진술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돼 경기남부경찰청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2015년에 태어난 또 다른 아이는 출생 직후 보호자가 베이비박스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들의 상당수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유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2015~2022년 베이비박스를 통해 1418명의 아이가 들어왔다고 22일 밝혔다. 1418명 중 친모가 출생신고를 거부한 1045명은 미아신고가 됐다. 이 경우 아이가 시설에 가거나 입양이 돼도 서류상에는 임시신생아번호가 남아 있다. 주사랑공동체 관계자는 “베이비박스 사례를 제외한다면 적어도 1000여 명의 아기가 ‘유기에 의한 사망’했거나 ‘불법 인터넷 입양거래’가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출생통보제’ 등 몇년째 국회 계류 중
현재 국회에선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 지자체장에게 의무적으로 출생을 알리도록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된 상태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3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개정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서 논의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산모를 더 위험한 출산으로 내모는 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스스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산모는 미혼모·미성년자 출산 등으로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이 그들의 출산을 강제로 지자체에 통보하는 건 화장실 출산 같은 위험한 출산으로 산모를 내모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출산 사실 공개를 꺼리는 산모가 위험한 출산으로 내몰릴 것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는 게 ‘보호출산제도’다.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정보를 비공개하고, 산모가 아이를 기르지 못할 경우 지자체에 안전하게 인도할 수 있게 지원하는 내용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보호출산제는 출산통보제를 보완하는 방안이라 두 법이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