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은 청자진사주전자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꼈는지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 2층 전시실에 30㎜ 방탄유리로 쇼케이스를 만들도록 지시한 일화로 유명하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1976년 일본경제신문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지요. “나의 소장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유물은 ‘청자진사주전자’나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 등이다. 자랑하기는 그렇지만, 고려청자 중에서도 최고의 명품이라고 나 스스로 인정할 정도이다.” 그는 자타 공인 청자 매니어였습니다.
컬렉터 주재윤(셀라돈 대표)씨는 뜻밖에 40대 중반입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10년 전 우연히 청자 한 점을 선물 받고 너무 설레서 잠을 다 설쳤다”며 “이후 청자에 미쳐 살았다”고 했습니다. 강릉에 사는 그가 “청자가 눈앞에 아른거려” 밤을 꼬박 새우며 부안 청자박물관이나 고려청자박물관으로 달려간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지요. 청자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관련 고서적도 미친듯이 사모으며 읽었고요. 한약 관련 사업을 하는 그에게 청자는 이를테면 ‘돈 먹는 하마’와 같았습니다.
한 고미술 관계자는 “다들 현대미술에 시선이 쏠린 시대에 청자를 모은다는 건 ‘본전’ 생각하면 절대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40년 넘게 고미술을 수집해온 70대 소장가도 “청자 하나에 집중하면서도 작품이 다양하게 잘 갖춰져 있어 놀랐다”면서 “수집가가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모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미술계에 아주 귀하고 소중한 컬렉터 한 명이 탄생했다”고 말했습니다.
주씨는 “좋은 것은 나누고 함께해야 커진다고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다”며 “언젠가 강릉에 청자박물관을 여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인연’ ‘열정’ ‘정성’ ‘공유’라는 키워드로 불쑥 다가온 우리 시대의 ‘괴짜’ 청자 컬렉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