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출범한 새 국정원의 간부 인사 문제가 수면 위에 처음 떠오른 시기는 지난해 6월이었다. 김 원장은 전 정부에서 승진한 1급 보직 국장 27명 전원을 대기 발령했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다만 이때만 해도 정부 초기에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를 대규모 물갈이하는 건 관례라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논란이 커진 건 지난해 10월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돌연 사퇴 때였다.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최측근이었던 조 전 실장의 사퇴 배경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조 전 실장의 갑작스러운 하차를 놓고 다른 해석도 있었지만 “인사 문제를 두고 김 원장과 조 전 실장의 갈등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조 전 실장의 사퇴로 김 원장이 판정승을 거뒀다” “전 정부의 국정원 주류와 가까웠던 인사들의 기용을 놓고 의견차가 있었다”는 말이 적지 않았다. 이번 인사 파문에서 김 원장의 조력자로 전횡설이 돌고 있는 국정원 공채 출신 부하 직원 A씨의 존재가 부각된 것도 이때였다.
조 전 실장의 사퇴와 비슷한 시기, 1급 보임자 20여 명과 2ㆍ3급 100여 명을 대거 교체하는 일도 있었다. 국정원을 관할하는 국회 정보위 관계자는 “당시 김 원장의 인사에 A씨의 입김이 더 커졌다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조 전 실장에게 이긴 김 원장으로선 A씨에 대한 신뢰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대통령이 인사를 스스로 거둬들인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국정원사(史)에 기록될 혁명적인 사건”이란 말이 나오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통상 정권이 바뀐 뒤 진행되는 국정원 내부의 주류 교체와 인적 청산이 이번 사태에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엔 이견이 별로 없다. 전·현 정부 국정원 주류 세력 교체와 물갈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용산으로까지 번져 대통령의 인사 번복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김 원장과 A씨가 주도한 인선에 불만을 가진 인사들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사태가 이지경까지 이르렀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정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 때의 과도한 적폐청산이 원인”이라며 “그때 죽기 살기로 나뉘어진 파벌 싸움의 여파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사는 “정부와 상관없이 정권 교체에 따라 이뤄지는 이른바 숙정(肅正)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인 김 원장과 내부 출신들간의 알력이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국정원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간첩 잡으러 뒷골목에서 막걸리 마시는 국정원 요원과 넥타이 매고 와인 마시는 외교관은 근본 스타일이 다르다”며 “국정원 장악에 애를 먹던 김 원장이 국정원 공채 출신 부하에게 휘둘리면서 혼란이 발생한 것 같다”고 했다. 진보 진영 정부에서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전직 간부도 통화에서 “김 원장이 내부에 믿을 만한 특정인 A씨에 의존한 것 같다”며 “지금까지 보여준 김 원장의 리더십으로 봤을 때 김 원장 체제로 계속 가기엔 조금 어려워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원장과 A씨의 관계가 공공연하게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대통령의 결재가 뒤집히는 등 국정원내 갈등이 공개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놓고는 “여권 핵심부 인사들간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또 여권 인사들 사이에선 "그동안의 인사나 국정원 개혁 과정에서 김 원장의 손을 들어줬던 윤 대통령의 이번 인사 번복은 김 원장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지난해 조상준 전 실장의 사퇴 때도 A씨의 인사 전횡과 김 원장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지만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던 것 아니냐”며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윤 대통령의 모사드 구상이 갈림길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