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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1970년대생의 정치사회학

중앙일보

입력 2023.06.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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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몇 년 시선을 잡아끈 두 권의 세대론 책이 있다.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2018)와 고재석의 『세습 자본주의 세대』(2023)다. 전자가 1990년대생 보고서라면, 후자는 1980년대생 고백록이다. 특히 『세습 자본주의 세대』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나서 어쩌다 ‘영끌족’이 돼버린 30대의 축복과 고통에 대한 서사를 생생히 담고 있다. 1960년에 태어난 내겐 다음 세대의 내면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참고서들이었다.
 
이념적 구속에서 벗어난 ‘신세대’
자율·감수성 중시 개인주의 성향
세대교체가 시대교체 되기 위해선
교량·포용·통합 리더십 발휘해야
 
세대 담론은 명암이 뚜렷하다. 계급·이념·젠더가 세대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균열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집합적 망탈리테’와 ‘개인적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세대는 매력적인 담론이다. 망탈리테란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사고·심성·생활양식을 뜻한다. “각각의 시대는 망탈리테적으로 자신의 우주를 만든다”고 말한 이는 역사학자 뤼시앵 페브르다. 우리 사회처럼 사회변동이 빠르게 진행되는 곳에서는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망탈리테가 존재할 수 있다.
 
내러티브란 개인의 관점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맥락에 따라 연결하여 구성한 이야기를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삶이란 자기 방식의 내러티브로 이뤄진 하나의 과정이다. 따라서 내러티브는 개인의 생각 및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이 무한경쟁 시대에 정신적·정서적 닻이 될 수 있는 내러티브로서의 삶이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망탈리테와 내러티브는 힘이 세다. 의식과 이성을 넘어선 무의식과 감정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망탈리테의 관점에서 1970년대생들은 ‘한국적 X세대’다. 1990년대에는 ‘신세대’로 불렸다. 당시 신세대는 산업화세대의 반공주의는 물론 86세대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념적 구속성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대신 자율성과 감수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로부터 큰 세례를 받았다. 이 점에 착안해 나는 70년대생을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로 명명한 바 있다. ‘한국적 자유의 아이들’이 바로 70년대생이었다.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1960년대생과 70년대생은 서 있던 자리가 달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는 과정에서 안정된 자리를 이미 차지한 60년대생과 달리 70년대생은 무한경쟁과 구조조정이라는 변화된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70년대생은 상처받은 세대였다. 그 상처는 이중적이었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적 좌절의 상처가 하나였다면, 60년대생의 장기적 영향력에 따른 사회적 소외의 상처가 다른 하나였다.
 
정치적으로 70년대생의 개인주의는 권위주의적 보수보다 자유주의적 진보에 친화적이다. 대표적인 자료의 하나가 지난해 3월 9일 대선의 투표 결과다. 출구조사를 보면, 윤석열 후보는 60대에서 32%p, 70대에서 41.4%p의 차이로 이재명 후보를, 이재명 후보는 40대에서 25.1%p, 50대에서 8.5%p의 차이로 윤석열 후보를 앞섰다. 한편 2030세대의 경우 두 후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결과는 70년대생이 현재 가장 진보적 세대임을 증거한다.
 
70년대생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일련의 사건들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40대는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로 외환위기(1997), 촛불시위(2016), 월드컵(2002), 세월호 참사(2014), 노무현 대통령 서거(2009) 등을 꼽았다. 70년대생 다수는 보수세력에게 부정적인 기억들을 갖고 있고, 이 ‘기억의 정치’의 내러티브는 이들을 진보세력의 가장 든든한 지지그룹으로 만들었다.
 
대선 이후 70년대생의 내면 풍경은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연대를 앞세우지만, 70년대생 다수에게 정부의 통치 스타일은 철 지난 권위주의와 통합 없는 갈라치기로 비친다. 그렇다고 이들이 민주당에 더는 튼튼한 우호집단은 아니다. 한국갤럽의 16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40대의 경우 민주당 지지(47%)가 국민의힘 지지(23%)의 2배에 달하지만, 무당층 또한 26%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중잣대, 팬덤정치, 방탄국회 등에 대한 실망과 비판은 70년대생도 공유하고 있다.
 
70년대생은 교수가 되어 교정에서 만난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민주화의 가치를 공감한다는 점에서 86세대와, 개인주의의 감수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2030세대와 통한다. 서로 다른 두 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아우를 수 있는, 그리하여 통합할 수 있는 세대가 70년대생이다. 70년대생에 부여된 과제는 바로 이 교량적·포용적·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년 4월 10일 총선으로 향하는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시간을 이기는 세대는 없다. 세대교체가 우리 정치의 자연스러운 화두가 될 것이다. 21세기 대전환을 떠맡을 세대교체가 이뤄지되, 세대교체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재구조화를 추구하는 시대교체 또한 진행되길 나는 소망한다. 70년대생의 분발에 거는 기대를 적어두는 까닭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