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관세청·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대(對) 러시아 및 CIS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3.9%, 78.8% 급증했다. 주요 수출 지역 중 몇 안 되는 '플러스'(+) 성장이자 최대 증가 폭이다. -15.2%를 찍은 전체 수출 증감률과도 대비된다.
올해 초까지 감소하던 이들 지역으로의 수출은 3월부터 수십~수백% 성장세로 전환됐다. 여기엔 러·우 전쟁에 따른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3월부터 전쟁 여파가 본격화하며 수출이 흔들렸고, 올해 들어 점차 회복되면서 그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이후 시장 철수·거래 중단 등으로 대러 무역 통로가 좁아진 상황에서 러시아 인접국 등을 통한 우회·병행 수출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올 들어 CIS 국가 중 카자흐스탄(76.4%), 키르기스스탄(509.2%)의 수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두 곳은 2015년 러시아 중심으로 출범한 경제 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참여국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러시아의 수출 증가율은 16.3%로 이들보다 낮은 편이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은 "올해 들어 CIS 국가들의 대 한국 수입 수요가 갑자기 늘었다기보단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카자흐스탄 등을 통한 우회·병행 수출이 안정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요 제품의 수출액은 대부분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증가했다. 대 키르기스스탄 자동차 수출액이 1년 전보다 1514.4% 뛰거나, 카자흐스탄으로 수출된 비누·치약 및 화장품이 같은 기간 82.7% 늘어난 식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이번 달 카자흐스탄에서 CIS 지역을 겨냥한 소비재 수출 상담회, 판촉 전시회 등을 진행하고 나섰다.
대 러시아 수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부 수요가 많은 운반하역기계·건설 중장비·화장품 위주로 수출이 확대되고 있다. 신차보다 가격이 낮고 제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고차도 인기다. 올 1~5월 대러 중고 승용차 수출액은 3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85% 급증했다.
러시아 등 CIS로의 수출은 기저효과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 증가세를 이어갈 거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도 지난해 -2.1%로 뒷걸음질 쳤지만, 올해는 0%대 안팎으로 반등할 거란 예측이 IMF(국제통화기금) 등에서 나왔다. CIS 지역이 미국·중국·유럽연합(EU) 같은 주요 시장보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무역 개선의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정민현 팀장은 "러시아 지역은 인적 네트워크 등이 중요한데 한 번 끊어지면 복원하기 어렵다. 소비재 등의 수출을 꾸준히 이어가는 한편, 중앙아시아의 CIS 국가들을 지렛대로 협력 기반도 닦아놔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