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의 ‘청혼 허례허식’을 조명했다. 이날 WSJ 지면 1면 하단에는 ‘결혼식 전 비싼 장애물: 4500달러(약 570만원)짜리 청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WSJ는 하루 숙박비가 100만원이 넘는 고급 호텔에서 명품 가방과 장신구 등을 선물하는 게 최근 한국의 청혼 트렌드가 됐다고 지적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어로 '호텔 프러포즈'를 검색하면 해시태그(#)가 4만4000개를 넘는다. 인증샷에는 꽃·풍선·샴페인을 비롯해 보석 장신구나 명품 핸드백이 등장한다. 매체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청혼을 받았거나 할 예정인 한국인 사례를 전했다.
회사원 하 씨(30)는 최근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는데 약 570만원을 들였다. 그는 6개월 전에 예약을 마친 뒤 호텔에서 비싼 선물을 전달했다. 하 씨는 호텔에 카메라 3대를 두고 청혼 과정을 찍은 뒤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하 씨는 "솔직히 금전적으로 부담이 됐다"면서도 "그렇지만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고 했다.
직장인 이 씨(27)는 인천에 있는 5성급 호텔에서 남자친구에게 청혼 선물로 디올 핸드백을 받았다. 이 씨는 WSJ에 "한국에서는 자기 혼자만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유행을 따르는 게 좋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고가의 선물을 주며 청혼하는 방식이 유행하자 한국 호텔들이 관련 상품을 내놨다고 WSJ는 전했다. 파티 플래너인 그레이스 홍은 과거 월 두세 차례 호텔 청혼 이벤트 문의를 받았지만, 이제는 월 20~30차례로 늘었다.
시그니엘 호텔은 꽃장식과 샴페인 등이 포함된 ‘영원한 약속’이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57만원으로 고가지만, 월평균 38회 예약이 이뤄지고 있다. 콘래드 호텔은 하트 모양의 케이크와 꽃, 와인이 포함된 ‘올 포 러브’(ALL FOR LOVE) 패키지를 출시했다.
WSJ는 "호텔에서 하는 청혼 이벤트는 코로나 기간에 특히 힘을 얻었다"면서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 코로나 걱정을 덜 수 있기에 이상적인 장소로 호텔을 선호하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청혼 트렌드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 청혼 계획을 아예 늦춘 사례도 있었다. 김 씨(34)는 WSJ에 "여자친구가 호텔에서 3000달러(약 382만원) 상당의 샤넬 가방을 청혼 때 받은 친구의 사진을 보여줘 깜짝 놀랐다"며 "머릿속으로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부터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김 씨는 올여름으로 계획했던 청혼을 연말로 미뤘다. 김 씨는 "이 정도면 저축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씨가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청혼 이벤트에 관해 묻자 반응은 기혼자와 미혼자로 갈렸다고 한다. 미혼자들은 "샤넬백을 살 여유가 되느냐, 프러포즈가 정말 필요한가"라고 물었지만, 기혼자들은 "이벤트를 하지 않으면 평생 청혼 이벤트를 안 했다고 쓴소리를 듣게 된다"고 조언했다.
WSJ는 "한국 결혼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큰 비용이 드는 호화로운 호텔 청혼은 혼인율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커플들에게는 부담을 주는 웨딩 트렌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