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시조가 있는 아침] (179) 함관령 해진 후에

중앙일보

입력 2023.06.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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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함관령(咸關嶺) 해진 후에
작자 미상
 
함관령 해진 후에 아득히 혼자 넘어
안개 잦은 골에 궂은 비는 무슨 일고
눈물에 다 젖은 옷이 또 적실까 하노라
- 근화악부(槿花樂府)
 
고통은 때로 예술이 되고
 
함관령은 함경남도 함주군 덕산면과 홍원군 운학면 사이에 있는 높이 450m의 고개다. 홍원에서 함흥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일대에 화강암 절벽이 많아 산세가 험하다. 고갯마루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영상리에는 고려 공민왕 때 이성계가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전공을 기념하는 ‘달단동승전기적비(韃靼洞勝戰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 사람들이 함부로 함관령을 넘지 못하게 했으며, 북방으로 귀양 가는 죄인들은 함관령을 넘어야 했다.


이름을 알 길이 없는 가인(歌人)이 이 험한 함관령을 해진 후에 혼자 넘고 있다. 아득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랑하는 님과 헤어졌을 듯하다. 안개가 자주 끼는 골짜기에 오늘은 궂은 비까지 내린다. 그러지 않아도 눈물에 옷이 다 젖었는데 빗물에 또 적시게 되었구나.
 
사랑과 이별의 고통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되어 남았다. 그래서 고통은 때로 예술의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이 시조는 이런 연시(戀詩)적 측면 외에, 사람의 역경은 겹쳐서 온다는 교훈으로도 읽을 수 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