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최승자의 출사표인 셈인데,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시작하여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로 끝을 맺는다. 이 시의 첫 행을 해석하는 시선은 너무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기부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태도로 해석되는 것이 다반사지만, 읽기에 따라 이 문장은 그저 ‘리셋’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광활한 우주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면 이 말은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일찍이’라는 말로 이 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라는 뜻으로 쓰이진 않았다. 그랬다면 시인은 ‘옛날부터’라 표현했을 것이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문장은 시대에 따라, 읽는 이의 심정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뜻으로 되살아나는 문장이다. 멀지 않은 날, 우리 인류가 진작에 합의하고 받아들였으면 가장 좋았을 문장으로 부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