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배우는 인공지능과의 공존법
인간 최고수 충격적 참패에도
바둑계, AI 연구 통해 큰 혁신
TV중계·유튜브 등서 적극 활용
부정적 영향 지나친 우려보다
미래세대 AI 활용 능력 키워야
바둑계, AI 연구 통해 큰 혁신
TV중계·유튜브 등서 적극 활용
부정적 영향 지나친 우려보다
미래세대 AI 활용 능력 키워야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의 충격
인간과 인공지능(AI) 간의 바둑대결이라는 역사적 이벤트가 벌어진 지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과연 바둑계는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을까.
AI가 바둑 매력 앗아가지 못해
바둑을 두지 않는 분들이라면 바둑계가 쇠락의 길을 걸었으리라 짐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바둑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컴퓨터가 정복하기엔 쉽지 않으리라는 희망에 가까운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런 ‘심오함’에 대한 믿음과 기계에 대한 인간 우위라는 상징성이 바둑의 인기를 뒷받침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깨졌고, 그로 인해 바둑의 핵심적 매력이 사라지면서 인기가 사그라들었으리라 생각했을 수 있다.
조훈현, 이창호 등이 활약하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바둑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 또는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놀이의 발전이 바둑의 상대적 지위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면 모를까, 알파고로 인한 충격이 바둑의 쇠락을 가져왔다는 뚜렷한 증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기계화가 어떤 놀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 소멸의 길로 가져간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반례(反例)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내연기관이 발명된 이후 인간이 자동차보다 더 빨리 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100m 달리기는 육상의 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우사인 볼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간으로 추앙받고 있다. 바둑과 더 근접한 예는 장기나 체스일 것이다. 바둑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컴퓨터가 장기와 체스의 최고수를 이겼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이들 게임을 즐긴다. 컴퓨터의 확산으로 인해 더는 주산을 이용하지 않지만, 이는 업무 효율성이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놀이라는 영역에서는 AI의 등장이 반드시 그 재미나 인기를 급속하게 앗아가지는 않는 듯하다.
프로기사들 AI 바둑 적극 연구
바둑의 성쇠라는 결과보다 더 주목할 점은 바둑계가 그동안 AI의 충격에 대응한 방식이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는 AI에 좌절하거나 AI를 금기시하고 기피하는 대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로기사들은 AI가 두는 수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AI가 인간을 이긴 것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나 실수를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기사들이 사용하지 않던 다양한 수들을 구사했던 점도 중요했다. 예를 들어 AI는 포석 단계에서 ‘삼삼 침입’처럼 그동안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금기시되거나 아마추어나 두는 것으로 여겨지던 수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프로기사들에게 승리했다. 프로기사들은 AI가 구사하는 다양한 수법들을 보면서 그동안 사로잡혀 있던 선입관이나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이것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포석이나 중반전 단계에서 엄청난 혁신을 가져왔다.
중요한 점은 프로기사들이 이 과정에서 AI가 두는 방식을 그저 모방하고 답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로기사들은 AI가 두는 여러 수를 분석하고 왜 이런 수가 더 효율적인 수인지를 치열하게 연구해서 체화했다. 다른 나라 기사들도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우리나라의 프로기사들은 AI 연구에 있어서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효율적으로 흡수한 듯하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도 중국에 밀리던 한국의 프로기사들이 2010년대 말 이후 중국, 일본을 누르고 정상을 차지한 데에는 이러한 요인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특히 현재 세계 바둑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진서 9단의 바둑은 AI와의 일치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극적으로 AI를 활용한 프로기사들의 연구와 훈련은 바둑의 수준과 재미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 바둑, AI 연구로 중국·일본 눌러
AI의 활용은 프로기사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요즘 바둑TV나 유튜브 방송을 보면 프로기사인 해설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수를 해석해서 설명하면서 AI가 제시하는 좋은 수는 무엇인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AI가 예측하는 승률 정보를 항상 보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많은 시청자가 궁금해할 텐데, 그걸 외면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AI가 제시하는 수에 대해 감탄하기도 하고 혹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면서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해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재미를 끌어올렸다.
앞으로 바둑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난 7년 동안을 되돌아보면 바둑계는 AI와 공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 먼저 그리고 엄청난 규모로 충격을 받았던 바둑계가 밟아온 길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와 같은 낙관론에 가까운 관찰에 더해서 두 가지 시사점을 더해본다.
첫째, AI를 활용하는 자세 또는 마음가짐이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 서비스인 챗GPT의 등장은 학생들이 챗GPT를 이용한 보고서 작성 가능성을 열어놓아 대학가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미 여러 학교에서는 이의 통제에 대한 고민을 넘어 창의적 활용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챗GPT를 마음대로 활용해서 과제를 제출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미래 세대에겐 챗GPT와 같은 도구가 필수가 될 텐데, 이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보다 창의적으로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오픈북’ 시험이 사실은 책을 그대로 베껴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시험문제를 내는 것이 핵심이듯, 교육자가 적절하게 문제를 낸다면 ‘오픈 챗GPT’ 시험 또는 과제는 과거보다 훨씬 창의적인 교육과 새로운 기술 습득에 도움이 될 것이다.
AI 제시한 결과의 분석·이해가 중요
둘째, AI의 개발만큼이나 AI가 내놓은 여러 가지 결과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알파고나 이후에 개발된 많은 바둑 관련 AI는 어떤 수가 다른 수보다 승률이 높다는 것만을 보여줄 뿐, 왜 그 수가 좋은 수인지를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프로기사들이 단순히 그 수들을 습득해서 실전에 사용하기 전에 수많은 연구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접근은 다른 영역에서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량 등 요즘 눈부시게 발전하는 다양한 영역의 AI는 바둑보다도 훨씬 복잡한 요인들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영역일수록, AI가 내어놓은 결과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그 결과의 수용과 활용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AI가 내놓는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개발만큼이나 더 많은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과제를 안겨준다. 동시에 이는 AI와 공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줌으로써 희망을 주기도 한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발전과 같은 사례에 우리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김두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