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영화 세트장이 배경인 ‘거미집’은 걸작을 완성하기 위한 감독 김기열(송강호)의 광기 어린 집착을 담은 영화다. 김기열은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에 관해 며칠 동안 같은 꿈을 반복해 꾼다. 제작자인 백 회장(장영남)은 멀쩡한 영화를 다시 찍겠다는 데에 반대하지만, 백 회장 조카인 영화사 ‘신성필림’의 실제 후계자 미도(전여빈)는 김 감독의 조력자를 자처한다. 영문도 모른 채 모인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검열 당국의 방해를 따돌린 채 새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는다. ‘거미집’은 ‘조용한 가족’ ‘반칙왕’ 시절의 김지운·송강호 조합이 떠오를 만큼, 상황이 주는 페이소스, 기막힌 코미디 호흡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김 감독은 “(송)강호씨가 현장에 있으면, 또 한 명의 감독이, 또 한 명의 제작자가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며 “감독처럼 영화 전체, 현장 전체를 보는 배우다. 역량, 연륜, 관록, 존재감에 있어서 ‘거미집’의 감독 김기열 역할에 송강호야말로 가장 딱 맞고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송강호에 대한 불변의 믿음을 표시했다. 송강호도 “배우들의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내는” 김 감독의 탁월한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
지난 몇 년간 팬데믹을 거치며 ‘왜 영화를 하고 왜 감독을 하는 것인가’라는 원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김 감독은 “다 걷어내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 보니 결국 영화에 대한 사랑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영화를 향한 사랑의 지속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거미집’에서 김 감독이 마주한 건 배우 송강호 얼굴 위에 겹쳐진 자신의 얼굴이었다. “카메라가 송강호 얼굴로 점점 다가가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내가 나를 마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떤 기이한 체험을 했던 것 같아요.”
공식 경쟁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프랑스 영화 ‘아나토미 오브 어 폴’의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받았다. 남편 살해 혐의를 벗으려는 여성을 그린 작품으로, 여성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제인 캠피온(‘피아노’), 쥘리아 뒤쿠르노(‘티탄’)에 이어 세 번째다.
남우주연상은 빔 벤더스 감독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일본 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돌아갔다. 한국 작품으로는 학생영화 부문 ‘라 시네프(시네파운데이션)’에서 황혜인 감독 단편 ‘홀’이 2등상을 수상했다.
칸=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