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입법권 남용 방치야말로 대통령의 직무유기”

중앙일보

입력 2023.05.2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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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5일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는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헌법적 책무”라며 “오히려 행사하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가 국회 입법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야당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 분립 정신에 기반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로, 오히려 입법권 남용을 방치하는 것이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의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야당의 거부권 행사 비난은 협치를 빙자한 ‘할리우드 액션 협치’”라며 “겉으로는 협치를 요구하며 거부권 행사를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갈등 당사자 간 갈라치기 입법을 통해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누리호 3차 발사를 함께 시청하기로 했던 초중고생 50여 명과 함께 대통령실 2층 집무실과 접견실, 확대회의장 등을 둘러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통령실

 
윤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양곡관리법(4월 4일), 간호법(5월 16일)에 이어 3번째 거부권 행사가 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은 지난 24일 노란봉투법에 대한 국회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불법파업 조장법”이라며 반대해 온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강행 처리됐다. 이 법안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한편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파업 만능주의로 귀착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입법권을 남용해 ▶헌법 위배의 입법을 하거나 ▶국가 재정 낭비 등 국민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거나 ▶국민 갈등을 조장하는 법안을 추진할 경우, 헌법적 책무에 따라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간호법 제정안에는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재의를 요구했다.
 
대통령실에선 야당의 무리한 입법 강행이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기류도 적지 않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 야당이 밀어붙이는 법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스스로 반대했던 법”이라며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돌변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지속해서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주먹을 쥐고 응원하고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거야의 입법 강행-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악순환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노란봉투법에 이어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야당은 강행처리를 예고하고 있는 반면에 여권은 공영방송을 영구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악법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 참모는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은 입법권을 휘두르고 있고, 여당은 제대로 타협과 조율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여야 간 극한 대립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 깊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