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무섭게 내리쬐던 어느 여름, 어디선가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들어오던 바퀴가 있었고 일순 비닐봉지 하나가 허공으로 높이 솟구치더니 이내 사방으로 후드득 사정없이 튀던 흰 쌀알들. 친구가 그리워 눈을 감을 때마다 끝도 없이 펼쳐지던 핏빛, 아니 시뻘건 볏의 맨드라미들. 검붉다, 라고 쓰고 슬프다, 하고 지우기를 나는 얼마나 반복해왔던가.
3년 전 아빠가 쓰러졌다. 중증뇌경색이었다. 응급실에 실려 간 그날부터 온갖 병원 전전하다 집에 누워 지내게 된 오늘까지 아빠는 네모난 침대 네 귀퉁이에 박혀 있는 네 개의 은빛 바퀴에 몸이 들려 산다.
크고 정직한 바퀴 두 개 미는 일에 무슨 요령이 필요할까 만만히 보다 실은 된통 업어치기를 당했다. 턱을 만날 때 코너를 돌 때 어쩌면 가장 기본이다 할 직진과 후진을 할 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앉아 있는 이의 느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거다.
“우왁스럽게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밀려거든, 스무스하게!” 아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휠체어를 멈춰 세운 채로 단어를 검색했다.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면 침착하게! “아빠 이거 내게 미리 하는 유언이야?” “그렇담 그 퉁침도 좋지.” 재빠르게 나는 그 구절을 SNS 프로필에 옮겨 적었다. SNS는 기억력의 천재니까.
김민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