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관객 돌파 '드림' 속 실제 인물, 오현석, 문영수 빅판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2023.05.20 09:00

수정 2023.05.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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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석 빅이슈 판매원(왼쪽)과 문영수 빅이슈 판매원. 문 빅판은 2011년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발가락 5개를 잃었다. 2017년 오슬로 홈리스월드컵 국가대표 골기퍼로 출전한 그는 "몸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골을 막았다"며 웃었다. 전민규 기자

 
 11전 1승 10패.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받아 든 성적표다. 형편 없는 결과였지만 주최측은 한국팀에게 최우수 신인팀상을 안겼다. “가장 홈리스 월드컵 취지에 맞는 팀”이라는 게 수상이유였다. 경기 내내 한국 팀은 전세계인들의 응원을 받았다. 당시 홈리스월드컵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오현석(54) 빅이슈 판매원(빅판)은 “전세계에서 온 관중들이 ‘코리아’를 외쳐줄 때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의 도전기를 다룬 영화 『드림』(이병헌 감독, 아이유·박서준 주연)이 지난 11일 개봉 16일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 〈드림〉은 2010년 브라질 홈리스월드컵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사진은 〈드림〉 속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홈리스 국가대표들이 축구 연습에 임하는 모습. [출처 네이버]

 
주거 빈곤층의 자립을 기원하며 열리는 국제 홈리스 월드컵에는 전통적인 축구 강국인 남미와 유럽을 포함한 50여개국이 참여한다. 참가국 중에는 별도의 홈리스 리그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홈리스팀에서 활동하다가 프로 선수로 이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베베도 포르투갈 홈리스팀 CAIS 출신이다. 
 
그에 반해 한국팀의 상황은 초라했다. 상당수가 운동 경험이 거의 없었고, 후원금이 부족해 티켓값을 내기도 빠듯했다. “냄새나고 더럽다”는 편견 때문에 기업 후원이 직전에 취소돼 네이버 기부 캠페인과 아고라 펀딩을 통해 티켓값을 마련한 『드림』의 스토리도 실화였다.   
 

운동장 한가득 ‘코리아’ 함성...전세계 감동시킨 꼴찌팀

 
 단 한 경기 승리에 그친 2010년 홈리스월드컵은 빅판들에게는 ‘승리의 경험’으로 기억된다. 오 빅판은 대표팀 선수 인선(이현우 배우)가 골을 넣는 순간을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았다. 오 빅판은 “내가 골을 넣었던 게 생각이 난다”며 “부딪히고 넘어져도 한 골이라도 넣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 간절함 덕분에 한 골이라도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 나온 팀의 첫 골 이야기였다. 자신감이 붙은 오 빅판은 이 대회에서 4골을 기록했다.  

오현석 빅이슈 판매원은 2010년 브라질 홈리스월드컵에서 한국팀 첫 골을 넣었다. 사진은 당시 홈리스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오 빅판의 모습. 골키퍼와 마주한 이가 오 빅판이다. [MBC,빅이슈코리아 제공]

 
오 빅판은 빅이슈를 만나기 전 3년 간 노숙 생활을 했다. 영화 속 캐릭터처럼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2010년 7월 무더운 여름날, 서울시 영등포구 무료급식소에 줄을 섰다가 창간한지 얼마 안 된 빅이슈코리아의 전단지를 받아든 게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6개월 이상 일하면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게 희망으로 보였어요.” 홈리스 월드컵에 다녀온 뒤 오 빅판은 소원하던대로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된다.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었지만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고, 그 뒤 오 빅판의 삶은 달라졌다. 
 

IMF로 흩어진 가족, "언젠가 함께 살 날 꿈꿔요"

 
 삼성역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문영수(64) 빅판은 2017년 오슬로 홈리스월드컵에 국가대표팀 골기퍼로 참가했다. “훈련을 한여름에 했는데 당시 선수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어요.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포기하고 싶기도 했죠.” 문 빅판을 붙잡아둔 건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이었다. “단순히 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라 선발 과정을 거쳐서 대표선수로 뽑힌 거니까. 하고 싶은데 떨어진 사람들도 있는데 책임감 있게 임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림』의 이병헌 감독은 2017년 오슬로 홈리스월드컵 당시 한국팀과 모든 일정을 함께하며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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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빅판은 『드림』VIP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보던 날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에서 딸과 재회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자신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문 빅판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가족과 헤어진 채 공장에서 숙식하며 지냈다. 2011년 기계에 발이 끼여 발가락 5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다. 삶의 희망이 없던 시절, 술에 기대 살던 그는 우연히 TV프로그램에 나온 빅이슈를 보고 희망을 갖게 됐다. “신용불량인지 홈리스인지 등등 제 조건은 보지 않고 일자리를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빅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홈리스월드텁 실화를 소재로 한 박서준(왼쪽부터), 아이유 주연 영화 '드림'이 노숙자 자활 잡지 '빅이슈' 특별판 표지를 장식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홈리스월드컵 참가는 문 빅판의 인생에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됐다.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이 순간을 못 버티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견뎌야 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빅판은 최근 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지금은 임대주택에 살지만 언젠가 가족과 함께 사는 날을 꿈꾼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인물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어요.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영화를 보고 빅판을 찾는 손님이 늘었다. 문 빅판은 “영화 보고 찾아왔다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반갑다”며 “박서준씨나 아이유씨도 ‘빅돔’(빅이슈 판매원 도우미)으로 한 번 와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도 홈리스들의 경기는 계속된다. 미국 세크라멘토에서 7월 8일~15일 2023년 국제 홈리스 월드컵이 열린다. 현재 한국팀은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 중이다. 빅이슈 코리아팀은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