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어쩌면 이들에게는 오늘이 중요한 걸까. 일본 대도시 도쿄와 오사카로 여행 온 한국의 20대, 30대 얘기다. 코로나19 빗장이 풀린 뒤, 올해 1~3월 전 세계로 출국한 한국 관광객 수는 498여만 명. 이 중 160여 만 명, 그러니까 세 명 중 한 명(32%)이 일본으로 향했다. 그런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라고 부르는 2030이 그 절반에 가깝다. 이들 2030은 일본에서 어떻게 지낼까. 25명의 한국인 2030을 도쿄와 오사카에서 만났다.
고궁·온천 대신 새로 뜬 명소 찾아
일단 여권만 챙겼다. 지난 11일 도쿄 시부야에서 만난 김형동(21)씨와 김용태(21·이상 서울)씨는 이렇게 ‘번개’로 왔다. 지난 7일 저녁에 “가자”고 했고 8일 아침에 나리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번개 일본 여행’의 부활을 몸소 실천했다.
번개 일본 여행이 다시 가능해진 이유는 얽히고설켰다. 지난해 10월 11일 일본 정부가 코로나19로 막아놨던 관광 무비자를 풀었고, 지난달 29일 입국 검역을 없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회복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제주도 가느니, 일본 간다’는 심리는 여전하다. 19일 기준 100엔=960원인 환율도 일본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제주에서 1인분 1만9000원짜리 삼겹살을 씹느니, 오사카 도톤보리 강변에서 1600엔짜리 튀김 꼬치를 특제 간장에 적셔 먹겠다는 로망도 작용한다. 한 국내 여행지 관계자는 “여행지 선택은 자유지만, 정말 (우리가) 걱정”이라고 말할 정도다.
“닷새 전에 일본 한번 가보자고 해서 어제 도착했어요.”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이에 대해 “젊은 세대는 꽉 짜인 일정을 미리 짜서 그 틀에 맞추기보다는, 디지털에 굉장히 익숙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엄지영 삼육대 경영학과 교수는 “50~60대 장년층이 IT기기 이용, 현지 음식 선택이 어려워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반면, MZ세대는 언제 어디서든 일본으로 자유여행을 떠난다”며 “OTA(온라인 여행사) 활성화, LCC(저비용 항공) 증가에다가 IT기기와 SNS를 통한 손쉬운 정보 획득은 MZ세대의 무기”라고 밝혔다. 현지에서 본 일부 2030은 스마트폰으로 킥보드에 접속해 교통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그래도 시부야·신주쿠·하라주쿠·아카히바라가 기본 아니겠어요.”
계획을 세우고 오는 2030도 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와는 다른 계획이었다. 자신들의 문화를 누리자는 것이었다.
한국의 2030 클럽 매니어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DJ 에릭 프라이즈(스웨덴)다. 친구의 비행기 사고로 투어를 멈췄던 그가 이번에 아시아 투어를 재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한국은 안 오고 도쿄에서 11~13일에 걸쳐 콘서트를 열었다. 조모(34·광주광역시)씨는 에릭 프라이즈와 함께 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그는 “아는 동생들도, 그 동생들이 아는 사람들도 수 십명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1박 2일, 길어도 2박 3일간만 일본에서 지냈다. 공연만 보고 ‘치고 빠지는’ 여행이었다.
안용주 선문대 항공관광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트렌드도 단기간, 단거리로 바뀌었다”며 “특히 2030의 경우, 개인의 취미 활동 연장과 확대를 위해 일본을 잠깐 찾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인터넷에는 ‘일본 원정 관람법’ ‘일본 공연표 구하기’ 등 한국을 찾지 않는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보기 위한 2030의 ‘팁’들이 10여 년 전부터 떠돌고 있다.
한국보다 ‘짭짤한’ 실내 암벽 도전도
이들처럼 일본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교외로 빠지는 2030도 있다. 최근 극장판 슬램덩크가 한국에서 흥행하면서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도쿄 남서쪽 가마쿠라를 찾기도 한다. 김모(32·서울)씨는 인스타그램에 가마쿠라 사진을 올리며 “조용하고 호젓한, 그러나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버려 한국의 2030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평했다.
조아라 한국관광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젊은 세대, 특히 20대가 가장 먼저 경험하는 해외여행지”라며 “2030의 여행 스타일도 쇼핑·먹을거리 위주에서 자연 경관으로 넓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서울에서 온 김소연(가명·26)씨도, 김남혁씨도 유니버설스튜디오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 검색을 시작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검색해 보는 중”이라며 그들은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무계획의 계획이 통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 2030의 능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