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의식부터 바꾼다…韓출산율 2배, 일본의 차원 다른 대책

중앙일보

입력 2023.05.19 05:00

수정 2023.05.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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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도쿄 신주쿠교엔의 벚꽃축제에는 어린이 동반 관광객을 위한 전용 출입구가 마련됐다. 도쿄 최대 벚꽃 명소 중 한 곳이다 보니 벚꽃철엔 입장권을 구매할 때부터 줄을 서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와 함께라면 장시간 대기하지 않고도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출산율 한국 0.78, 일본 1.27명  

이는 일본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의 하나인 ‘어린이 패스트트랙’의 예고편이다. 국립박물관·미술관 등을 이용할 때 어린이 동반가족과 임산부는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올해 여름부터 공공시설에서 먼저 운영하고, 민간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일본 기시다 정부는 저출산 대응책을 내놓으면서 '차원이 다른 대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출산은 물론 고령화까지 닮은 한·일 양국은 비슷한 시기에 대책을 발표했다. 양육 지원을 강조한 데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일본은 아동수당을 고등학생까지 지원하고, 사회 인식 변화를 강조하는 등 한국엔 없는 정책을 내놨다. 지난해 일본의 출생아 수는 79만명대로 역대 최소를 기록하는 등 마지노선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그런 일본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27명까지 떨어졌다. 한국(0.78명)은 이보다도 낮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은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에서 남성 육아휴직 확대, 방문육아돌보미 사업 등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를 확대했다. 저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어린이가족청을 신설해 11개 부처에 흩어져있던 기능도 통합했다. 이달엔 육아 시간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추가로 내놨다. 니혼게이자신문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3세 이하의 아이가 있는 직원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성령(省令)을 개정하기로 했다. 6월엔 재원조달 방안을 발표하기로 하는 등 대응책을 쉼 없이 쏟아내고 있다.
 

양육 지원엔 공감대, 현금 지원은 차이

얼핏 보면 한국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저출산ㆍ고령사회 정책 추진방향’의 내용과 흡사하다. 저출산위는 아이돌보미서비스를 확대하고 육아기 부모의 근로시간 단축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크다. 일본은 출산 시 지급하는 일시금을 42만엔에서 지난달부터 50만엔(약 485만원)으로 상향했다. 현재 1인당 월 1만엔(3세 미만은 1만5000엔)씩 중학교 졸업 때까지 주는 아동수당의 지급기한을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로 늘린다. 첫째는 월 1만5000엔, 둘째 월 3만엔, 셋째부터 6만엔을 주기로 했다. 한국은 내년부터 만 0세에 월 100만원, 1세엔 50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한다.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이 있다지만 지급기한이 만 8세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어린이 먼저 입장” 의식 개혁도

일본의 저출산 대책엔 육아 친화적 사회 구축을 위한 의식 개혁도 포함됐다. 앞서 언급한 ‘어린이 패스트트랙’이 대표적이다. 일부 지자체는 운전면허나 여권 신청 때 어린이를 동반한 이들을 위한 우선 창구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재정지원 사업 위주로 저출산 대책이 편중돼 있다 보니 의식 개선이나 자녀 동반 가족의 편의를 제고하는 내용은 없었다.

지난 3월 21일 벚꽃이 만개한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 사람이 몰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소비세율 인상 논의…“재원마련 찾아야” 

재원 마련에 있어서도 양국은 다른 접근을 보인다. 한국은 세율 인상이나 세목 확대 없이 예산안에 저출산 예산을 넣는 식이지만, 일본은 아동수당 지급액 인상을 위한 별도의 재원마련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발표한 대책을 실행하기 위해 수조엔이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비세를 더 걷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츠다 시게키(松田茂樹) 주쿄(中京)대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저출산 대책의 재원은 소비세가 적절하다”며 “사회의 구조를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국민 전원이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공저에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일본은 2014년에도 저출산 대응과 사회보장 내실화 명목으로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하고, 어린이ㆍ육아 분야에 7000억엔 규모의 재원을 투입했다. 2017년에는 교육과 보육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소비세율을 10%로 올렸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4일 “카페와 식당, 심지어는 공공이 운영하는 도서관조차 노키즈존이 돼버렸다”며 “공공시설부터 노키즈존을 없애자”고 했다. 어린이 동반 가족과 임산부는 박물관·미술관 등에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하는 제도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찬반 논란은 있지만, 저출산에 대한 심각성을 사회가 인식하고 자녀 양육 가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데선 공감대를 얻었다. 일본의 ‘어린이 패스트트랙’ 도입 목적 역시 의식 개혁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여성이 주 양육자가 되고 더 많은 육아 부담을 지는 문화가 있어 일·가정 양육 제도에 있어 한국보다 낫다고 하긴 어렵다”면서도 “지금 우리처럼 예산의 일부를 활용해 저출산 대응 재원으로 쓰는 식은 한계가 있다. 교부금을 사용한다거나 조세 개혁을 하는 등 재원마련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