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운용체계 이미 많이 낡아
국가방향 설정과 개혁은 엘리트 몫
지난 30년 한국 엘리트 제 몫 못 해
엘리트 계층 고착화 크게 경계해야
국가방향 설정과 개혁은 엘리트 몫
지난 30년 한국 엘리트 제 몫 못 해
엘리트 계층 고착화 크게 경계해야
그런 조선이 망하고 일제 35년을 겪고서도 한국의 지배계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가 보다. 고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2002)를 보면 북한의 6·25 남침으로 피난 중 정 회장은 그래도 나라를 위해 군인들 사기진작에 일조라도 하려고 자청해서 일선 정훈부대로 가는 신문을 배달했고, 작은 배로 해안선 도시와 섬들을 돌아다니며 뱃멀미로 왝왝 토해가면서 민심 동요를 막기 위해 정훈활동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7월 어느날 피난지 부산에서 전황이 궁금해 정치인들을 만나면 새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겠지 하여 민주당 사무실에 들렀더니 “전쟁터에서는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젊은 목숨들이 쓰러져가고 있는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웃통을 벗고 맥주를 마시면서 전쟁은 남의 일인 듯 한가하게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소문으로는 그들을 비롯해 소위 힘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만약 부산이 점령될 것 같으면 자식들과 일본으로 도망칠 배를 대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엘리트들이 늘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제대로 역할을 한 기간은 아마도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한 세대에 걸친 기간이었을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어낸 이 시대의 도약이 오늘날 세계 10위 규모의 한국을 가능케 한 발판이 되었다. 물론 이는 한국민 모두가 참여해 이뤄낸 결과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그 사회의 방향을 잡고, 개혁을 단행하며 끌고 나가는 것은 10%내의 엘리트들의 몫이다.
지금의 한국 엘리트들은 어떤가? 지난 30년간 한국사회가 걸어온 길을 보면 엘리트들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의 운용체계는 이미 많이 낡았다.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왜곡된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탈제조업이 시작된 지 30년 가까이 되고 고령화와 디지털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노사관계, 임금체계, 인사제도·관행, 교육시스템은 제조업 고성장 시대와 별로 변하지 않아 생산시설의 해외이전, 노동시장 2중 구조 심화, 조기 명예퇴직제도의 일상화, 일자리 수급불균형 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의 정치, 관료, 기업, 교육 엘리트들은 이를 수수방관해왔고 고칠만한 능력과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보상·징벌제도, 유인 구조도 마찬가지다. 이대로는 인재를 키우기 어렵고, 사회 전반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없다. 과거 개발시대와 달리 지금 한국 엘리트들의 경쟁 상대는 선진 열강들의 엘리트들이다. 그들만큼의 지식수준, 전문성, 도덕성, 안목을 갖추어야 지금의 한국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지금은 또한 세계적 대전환기이다. 우리의 생존에 무엇보다 중요한 미중간 패권 경쟁, 동서양의 세력 재균형, 국제질서의 재편성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을 갖추는 것이 지금 한국 엘리트에게 기본적 요건이다. 이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은 없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갈 창의력을 갖추어야 하며 이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치밀한 분석, 강인한 연마와 끊임없는 학습에서 나올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면 한국 엘리트들이 제 역할을 한 시기는 엘리트 계층이 고착되어있지 않고 경쟁에 넓게 열려있을 때였다. 1960년대 지배 엘리트들은 그 이전의 엘리트 계층이 아니었고, 빈농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엘리트 계층의 고착화야말로 우리가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 달만 지나면 아무 의미도 없을 논쟁과 정쟁에 매일을 허송하는 지금의 엘리트들은 이 시대 자신들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