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을 들으며 자랐기에 뮤지컬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KPOP'은 한국 아이돌 가수의 화려한 삶 뿐 아니라, 그 이면의 감정적 혼란과 인간적 면모까지 담아낸 뮤지컬이다. 실제 K-팝 아이돌 생활을 했던 에프엑스 루나(30·박선영), 유키스 케빈(32·우성현), 미쓰에이 민(32·이민영)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토니상 후보 지명 이후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헬렌 박은 “이번 뮤지컬 작업을 9년 동안 해왔다”면서 “계속해서 듣고 싶은 뮤지컬 음악을 작곡하고 싶었는데, 이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브로드웨이 최초 아시아 여성 작곡가, 헬렌 박
먼 길을 돌아 작곡을 시작했지만, 브로드웨이는 높은 벽이었다. 그는 “브로드웨이 역사에서 여성 작곡가가 정말 드물었고, 특히나 동양인 작곡가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너무 좋아했지만, 감히 브로드웨이 작곡가를 꿈꾸진 못했다”고 했다.
여성이면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받게 되는 차가운 시선과 편견은 일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도 동료 작곡가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모두가 저를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았다”면서 “뮤직 프로듀싱을 하는 분들 역시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에 ‘네가 혼자 했을 리 없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대학원을 졸업한 2014년, 뉴욕에서 실험극으로 유명한 아르스노바(Ars Nova) 극장에서 뮤지컬 'KPOP' 제작 참여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한 여파로, K-팝이 미국에서 재미있는 음악 정도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는 “아르스노바 극장에서 제의가 왔을 때,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다”면서 “이렇게 뮤지컬과 K-팝을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무조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팝 '찐팬' 자처…“K팝 원형 그대로 음악에 담아”
“외국에서 자라며 한국인을 향한 다양한 편견을 마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K팝이라는 장르를 또 하나의 편견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K-팝 장르를 대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편곡과 곡의 퀄리티에 각별히 신경 썼다”고 강조했다.
'KPOP'은 영어 뮤지컬이지만 한국어 대사도 종종 등장한다. 가사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절반씩 썼다. 그는 “가사가 아니어도 음악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게 K팝의 진정한 매력”이라면서 “좀 더 당당하게 K-팝을 원형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쇼 마지막 부분이 콘서트 형식으로 돼 있는데, 거의 모든 관객들이 머리를 흔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작곡가로서 정말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KPOP'은 12일 정식 음반을 발매한다. 현재 헬렌 박은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3편의 작업을 하고 있다. 장르도, 배경도 다른 작품들인 만큼 제각기 색깔이 다른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계획이다. “음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그는 K-팝을 소재로 한 음악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K-팝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신기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춤과 음악의 중독성 있는 조화, 그리고 머리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등이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