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종학의 경영산책

[최종학의 경영산책]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개혁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3.05.10 00:46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젊은 세대의 여론이 높다. 통계에 따르면 2055년이면 연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군인, 사학 등 다른 연금과 건강보험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는 듯하다. 폭탄이 터지면 젊은 세대는 돈만 내고 혜택은 별로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가가 사기성 피라미드 조직을 운영한다”고 비판할 정도다.
 
지난 1958년부터 약 20년간 매년 100만명이 태어났다. 이 베이비 붐 세대가 낸 돈으로 은퇴자들에 대한 연금이 유지되어 왔다. 이 세대가 부양한 이전 세대는 수가 많지 않았다. 위생과 의료기술이 열악한 시기였고,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하게 연금을 지불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세대가 은퇴를 시작했다. 이들을 부양해야 할 사람들은 매년 약 60만명 정도 태어난 자녀 세대(1988~2008년 출생)다. 즉 현역에서 일하는 60만명이 은퇴한 100만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 결과 현 제도를 그대로 두면 2055년엔 소득의 26%, 2060년엔 30%를 연금으로 내야 한다. 소득의 20% 또는 그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는 것을 고려하면 전체 소득 중 연금과 세금의 납부 비중이 50%가 넘는다. 이때면 건강보험료도 10%는 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를 합하면 60%다.
 
이대로면 2055년에 기금 바닥
수익률 1%만 올려도 9조 늘어
의결권 행사는 투명하게 하고
최고 전문가 일하게 만들어야
 
세금 거둬 충당한다는 황당한 주장
 

지난해 국민연금기금 운용 수익률은 -8.22%로, 지난 1999년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기금투자 수익률을 기본 가정치(연 4.5%)보다 1%포인트 끌어올리면 2055년으로 전망된 기금 고갈 시점을 5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 [연합뉴스]

일부에서는 혜택을 더 늘리거나 그대로 두고 나중에 각종 연금과 건강보험이 고갈되면 국가가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무책임하고 황당한 주장이다.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려면 그만큼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세금이건 연금이건 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어떤 명목에서건 국가가 개인 소득의 60%를 거두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일하지 않고 정부에서 주는 복지 혜택만 받고 살아도 일하는 것과 순소득 면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세금을 거둘 방법 자체가 사라진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현재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논의가 얼마나 내고 받을 것인지에 대한 것뿐이라서 안타깝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를 개혁하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는 90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므로 운용수익률을 1%만 높이면 연간 9조라는 엄청난 돈이 생긴다. 국민이 납부하는 연금액이 연간 42조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9조가 얼마나 큰 돈인지 알 수 있다.
 
기금운용본부의 목표는 높은 수익
 
그러기 위해서는 기금운용본부의 완전한 또는 운영상의 독립이 필요하다. 기금운용본부는 연금을 징수하거나 배분하는 기관이 아니라 자산운용사다. 자산운용사의 목표는 자산을 잘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과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때, 특정 정파와 가까운 기업인의 횡령·배임 행위를 모르는 체하거나 부적절한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일에 대해서 눈감는 일이 가끔 있었다.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는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강한 정치적 성향을 띠는 시민단체 출신들이나 정치인들 포함돼 있어서 자기편 사람들을 임명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과거엔 은밀하게 이런 일이 이뤄졌다면, 근래 들어서는 정부가 직접 국민연금 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이용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불과 몇 년 전 정치인들이 ‘삼성전자의 국민기업화’라면서 “법을 개정해 삼성의 지배권을 약화한 후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행사해서 삼성전자의 사장을 우리가 임명하겠다”고 하던 일이나, 최근 몇몇 기업의 CEO 인사를 두고 벌어진 정부 및 정치권발 논란이 그 예다. 이런 일까지 주주를 무시하고 정부가 나서야 하는지 의문이다.
 
경영진 선임 절차 및 기타 지배구조에 문제 있는 기업이 있다면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 특정 개인을 임명하거나 쫓아내려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처음에는 특수 상황에 있는 몇몇 기업에만 정부의 의지를 관철하겠지만, 시간이 가면 점점 더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이런 일을 할 것이 분명하다. 국민연금이 이런 일에 동원되다가 수익성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제도의 피해자 젊은이가 나서야
 
그러기 위해서는 의결권 전문위원회를 정치인, 시민단체, 공무원이 아니라 자산운용 전문가들로 구성해야 한다. 의결권이 남용될 수 없도록 명확한 행사기준을 마련하고, 회의에 누가 참석했고 안건마다 어떻게 투표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보는 눈이 무서워 기업가치를 저해하는 방향으로 위원들이 투표를 못 할 것이고, 기업가치와 관련 없는 일에 국민연금이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투자 담당 인력도 최고 전문가를 모셔서 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역량 향상을 위한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투자를 잘했다면 인센티브도 충분히 받을 수 있고 연임도 할 수 있어야 인재를 모을 수 있다. 민간 자산운용사들은 이런 제도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그러니 유능한 인재가 국민연금으로 잘 오지 않고, 온 사람도 다른 곳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망설이지 않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자발적으로 이런 개혁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힘을 내려놓겠다고 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제도의 피해자인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표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정치인들이 반응할 것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