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 이런 곳은 없어요.” ‘왓아룬’(새벽사원) 앞에서 내가 내민 사진을 본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그럴 리가…. 방콕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인 석학이자 작가인 이안 부루마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사진 때문이었다. ‘방콕의 믿을 수 없는 불교 사원’이라며 그가 올린 경관을 늦은 밤 퇴근길에 보고는 불교 신자도 아닌데 가슴이 뛰었다. 방콕 날씨를 확인한 뒤 비행기표를 끊었다. ‘세계적인 석학도 생성AI에 낚이는구나. 그래도 며칠 간 즐거웠으니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이안 부루마의 SNS를 다시 확인했다.
지난 3월 얼룩말 세로가 동물원을 탈출했을 때, 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보도를 접하기 전 메신저 단체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는 “요즘 AI 대단하다”고 말했다. 진위를 의심하고 경험에 기반한 판단을 내리는 건, 진짜와 가짜가 헷갈리는 세상에서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믿었다가 속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 한 친구는 챗GPT가 추천한 나트랑 현지 맛집이 대부분 가짜였다면서 AI가 주는 정보는 믿기 어렵다고 했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은 3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생성AI의 잠재력은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며 생성AI가 사기를 부추길 수 있고, 사기꾼이 진실해 보이는 메시지를 만드는데 이를 활용해 소비자를 기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종종 신문·방송업이 사양산업이란 말을 동료들과 자조적으로 했지만, 의심하는 태도와 검증의 능력, 언론의 사실 확인 역할은 앞으로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18세기 철학자 볼테르는 “의심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확신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다. AI시대에 이 말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참, 방콕에서 본 일몰의 불상은 어땠느냐고. 진짜임을 확인하고 여유를 부리다 이동하니 방콕 퇴근길 교통체증과 겹쳐 근처를 지날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어둠 속 희미한 불상의 윤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의심과 검증만큼 중요한 건 역시 제때의 마감, 시간 엄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