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돌확, 5월의 오아시스

중앙일보

입력 2023.05.0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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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집 앞에 세워둔 차의 앞창문이 온통 뿌옇다. 손으로 쓸어보면 노란 송화다. 4월 말에서 5월 초, 소나무는 꽃가루를 바람에 날린다. 한 꽃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자웅동체 식물은 그 출현 시기가 아주 늦다. 그 전에는 식물들이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수나무가 따로 있었고, 시간이 흘러 소나무처럼 한 나무에서 암꽃·수꽃을 따로 피우는 식물도 등장했다. 송화를 날리는 주범은 바로 소나무의 ‘수꽃’이다. 다른 나무의 암꽃에 닿으려, 바람결에 이렇게 많은 꽃가루를 날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속초, 우리 마을에선 이 송홧가루 날릴 때 논에 물을 댄다. 모는 이미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틔웠고, 바짝 마른 논에 물을 댄 뒤 모를 심는다. 속초에 이사 온 처음엔 뭐가 뭔지 모르고 계절이 흘러갔다. 이제 10년 차에 이르니 송홧가루 날리면, 논이 물이 채워지는구나, 이제 모를 심겠구나 등이 그려진다.
 

행복한 가드닝

이때쯤 나의 정원에도 생기가 돈다. 나는 작업실 앞 작은 돌확에 맑은 물을 넣어준다. 이 돌확에 물을 채우면 물두꺼비가 귀신같이 찾아온다. 물속에 금붕어를 넣어줄 때도 있고, 파피루스·물상추·개구리밥·부레옥잠을 넣어주기도 한다. 이 크지도 않은 돌확은 우리 집 정원의 오아시스다. 물을 마시러 오는 길고양이 서너 마리, 무리 지어 오는 참새들, 쌍쌍이 오는 직박구리와 동박새, 딱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왕래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작은 돌확의 물도 그 관리는 쉽지 않다. 날이 더워지면 물은 바로 오염이 된다. 이럴 땐 갈대·부레옥잠이 물을 정화해 그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물이 순식간에 초록 플랑크톤으로 덮이는 일도 일어난다. 이걸 막기 위해 검은색 식용 염료를 풀어주어 햇볕을 차단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더불어 모기의 부화장이 되기에 십상인데, 이럴 때 모기 애벌레를 먹어주는 금붕어도 큰 역할을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