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장 동안 신신예식장에서 무료 예식을 치른 부부 또는 그 가족들이 빈소를 많이 찾았다. 이들은 상주에게 “선생님께서 해주신 주례 말씀대로 하니 잘 살고 있다”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과 일면식도 없다’는 시민들도 “(부고) 뉴스를 보고 달려왔다”며 향을 피웠다.
고인의 아들 남문(54)씨는 “많은 분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아버지 선행, 잊히지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고인은 처음엔 ‘길거리 사진사’로 일했다. 1962년의 일이다. 그에겐 ‘하루 200원 저축’이란 목표가 있었다. 자신만의 가게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시절 사진 1장 가격이 20원이었다. 비가 오는 날엔 산에 가 나무를 하거나 비닐우산을 팔아 200원을 채웠다고 한다.
이런 경험 탓에 고인은 무료 예식봉사를 할 땐 주례, 신랑·신부 메이크업, 예식장·턱시도·드레스·신발 대여 등 예식 비용을 받지 않았다. 대신 사진값만 당시 기준 6000원을 받았다. 이 비용이 세월이 흘러 20만원, 40만원, 현재 70만원으로 이어졌다. 식비 제외하고도 1000만원 정도 예식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무료’나 마찬가지다. 이마저도 2019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뒤에는 사진값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신신예식장 사훈(舍訓)은 ‘고객 존경·고객 만족·고객 감동’이다. 사자를 모일 사(社) 아닌 집 사(舍)를 쓴다. 고인에게 신신예식장의 ‘무료 예식’은 ‘회사 운영’ 아닌 ‘집안일’이었던 셈이다. 지난해 4월 고인이 병상에 누운 이후부터 아내와 아들이 그의 ‘집안일’을 잇고 있다. 주례는 고인과 수십 년 지인인 백태기 전 창원여자중학교 교장이 맡고 있다. 남문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앞으로도 계속 (무료 결혼을) 해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