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쫓고 쫓기던 두 사람이 연립주택 옥상에서 대치한다. 산오는 죽음을 결심한 듯 흐느끼며 말한다. “가인이한테 ‘나 너 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산오는 가인이 때문에 “죽음보다 더 무서워하던” 감옥에 갔다 왔고, 살인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그가 ‘고생깨나’ 한 것은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보라. 고생깨나 시킨 것은 가인이가 아니라 가인이를 사랑했던 산오 자신이다. 이 사실은 ‘사랑’이란 두 글자에 만남의 설렘이나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도 내장돼 있음을 말해준다.
보고 싶어 잠 못 들던 날들도, 애태우고 속 끓였던 과정도, 그 사람 때문에 갈림길에 서야 했던 기억도 서래의 대사를 빌리자면 “마침내”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생깨나 했지만’은 순정을 다 바쳐서 사랑했다는 강조의 표현이 되고, “너무 쉬운 사랑은 다 거짓말”(버스커버스커)이 아닌지 묻게 만든다.
○○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당신이라면 ○○에 누구를, 무엇을 넣을 것인가. 자녀? 배우자? 연인? 종교? 돈? 직장? 아이돌? 중요한 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 인생 공허하지 않았다”고 외칠 만한 그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있느냐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