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만든 궁궐 진입로인 월대는 일제 강점기 전차가 들어서고, 도로가 조성되며 땅속에 묻혀 있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부터 8개월 가까이 광화문 인근을 발굴해 월대의 모양과 크기를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적은 월대 동쪽의 계단과 지대석(지면에 놓는 받침돌), 어도(임금이 다니는 길) 계단 터 등이다.
옛 문헌 기록과 사진 자료 등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1866년 만들어졌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궁궐의 격을 높이기 위해 광화문 앞에 월대를 세워 지면보다 높은 위치에 진입로를 조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은 흥선대원군이 이끈 경복궁 중건 공사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 1890년대 이후 사진 자료 등에서 확인된다.
문화재청 조사 결과 일제가 훼손하기 전 월대의 전체 규모는 남북 길이 48.7m, 동서 너비 29.7m로 확인됐다. 과거 광화문과 월대를 촬영한 사진 자료는 있었지만 정확한 모습과 규모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5년 발간된 '경복궁 광화문 원위치 복원 및 주변 정비 기본계획' 보고서에서 월대의 길이와 폭을 각각 52m, 29.5m로 추정한 것과 비교하면 규모를 더욱 명확히 한 셈이다.
월대 중앙에는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도 있었다. 조성 당시 광화문 월대는 동·서 양쪽에 잘 다듬은 돌(길이 120~270㎝·너비 30~50㎝·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안에는 흙을 쌓아 주변 땅보다 높게 대(臺)를 만들었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에도 월대가 있지만 난간석(울타리처럼 둘러진 석조 구조물)을 두른 모양은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당시 건축기법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여러 장의 지대석을 놓고 적색 점토로 보강한 기초시설, 철편과 점토·석회를 이용한 수평 맞춤 기술, 장대석(계단 등을 쌓기 위해 길게 다듬은 돌)이 밀리지 않도록 점토와 돌을 섞어 구조를 보강한 방식 등이다.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은 "원래 광화문 월대의 모습과 축조방식은 물론, 축조 이후 단계별 변화과정 등 광화문 월대의 복원을 위한 단서를 확보한 것이 이번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0월까지 광화문 월대를 복원할 계획이다.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는 10월, 광화문 월대의 복원 기념행사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