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가 변변찮은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와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삶이 불만족스러운 에이미(앨리 웡)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서로 차량이 부딪칠 뻔한 순간을 계기로 도로에서 분노의 추격전을 벌인다.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된 갈등은 상대의 집에 오줌을 뿌리거나 차에 낙서하고 도망치는 유치한 복수로 이어지더니, 점차 서로의 일과 가족을 망가뜨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품의 원제 ‘비프(Beef)’는 ‘불평’ 혹은 ‘불평을 해대다’는 뜻의 속어. 제목 그대로 불평불만 가득한 주인공들의 지독한 복수 결투를 그린 이 블랙 코미디는 4월 2주차(10~16일) 넷플릭스 공식 톱10 순위(영어 시리즈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고, 리뷰 사이트 IMDb 평점 8.3점(10점 만점), 로튼토마토 언론·평단 신선도 지수 98%를 기록하는 등 호평 세례를 받고 있다. “‘오징어 게임’ 이후 넷플릭스 최고작”(영국GQ) 등의 찬사부터 “‘비프’를 위한 에미상을 미리 닦아 놔라”(ABC뉴스) 등 내년도 주요 시상식 수상까지 벌써 점쳐진다. ‘성난 사람들’을 특별한 작품으로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둘은 같은 동양계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성별도 계급도 다르지만, 무거운 삶의 무게와, 그 무게를 버티기 위해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것에 신물이 났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서로를 닮아있다. 이들이 서로를 죽일 듯 혐오하는 건 어찌 보면 상대의 모습에서 발견한 스스로의 곪은 내면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인 셈이다. 이런 인물들의 처지를 보면서 미묘한 카타르시스와 치유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성난 사람들’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확보하는 동시에,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특수성 또한 획득한다. 자신이 실제 경험한 난폭운전 시비를 계기로 기획했다는 이성진 감독은 그 자신도 재미교포로, 자신이 경험한 요소들을 녹여냈다. 특히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재미교포 커뮤니티를 자세히 다룬 지점은 그간 나온 어떤 이민자 서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니야, 고통에 울부짖는 거지’(1화), ‘내 속엔 울음이 산다’(3화)와 같은 시적인 소제목들은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 등 유명인들이 남긴 문장에 따온 것이다. 특히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둠을 알아차림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라는 칼 융의 문장에서 따온 마지막 회 제목(‘빛의 형상’)에 대해 이 감독은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