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은 특별법에 피해 임차인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는다는 방침이다. 경매에 넘어간 전세 사기 주택에 대해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피해자가 매수를 원하면 세금 감면 및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한다. 경매를 통해 제3자가 주택을 낙찰받아 세입자가 쫓겨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도다. 피해자가 매수를 원하지 않을 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한 뒤에는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면 피해자가 저렴하게 임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이 주장하는 피해자에 대한 전세보증금 보상 조치는 법에 담지 않는다는 게 당정의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공공매입을 통한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를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정부기관이 채권을 매입해 피해 금액을 보상한 뒤 경매·공매·매각 등을 통해 투입 자금을 회수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은 대립각을 세웠다. 원 장관은 이날 “사기당한 피해 금액을 국가가 대납해 돌려주고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꿔주라는 것”이라며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은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등 관계부처에서도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이스피싱도 전세 사기 못지않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됐는데, 전세 사기를 보전할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액 역시 국가에서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여서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정의 특별법 방침에 대해 “초부자들을 위해 수십조원씩 세금 깎아줄 돈은 있어도 전세 세입자들을 위해 공공 매입할 돈은 없다는 말인가”라며 “당장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들에게 돈을 빌려줄 테니 집을 사라는 건 온전한 대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인간 발생한 채무를 공적 재원으로 변제하는 건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쌓이게 된다”라며 “당장 전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한 만큼 특별법을 우선 처리하고, 향후 전세 사기를 가능케 한 시장 왜곡이 있지 않았는지 점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