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김병기 ‘필향만리’] 이례절지

중앙일보

입력 2023.04.2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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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의 제자 유자(有子)는 “예(禮)를 적용하고 시행할 때는 화목함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 그러나 화목함을 화목함으로만 알고 예로써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런 화목은 시행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중국의 고대 경전인 『예기(禮記)』의 ‘악기(樂記)’에는 “예(禮)는 서로 다른 점을 분간하게 하고, 악(樂)은 서로 같은 것을 화합하게 한다(禮辨異, 樂和同)”라는 말이 있다. 예와 악의 관계를 잘 밝힌 말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많은 사람이 함께 노래 부르며 ‘대~한민국’을 외치던 거리응원이 바로 ‘악(樂)’이 이룬 화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의 분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노래 부르며 어깨동무를 했고 끌어안기도 했다.
 

以:써 이, 禮:예절 예, 節:절제할 절. 예로써 절제하다. 25x80㎝.

그랬다고 해서, 다음날 멀쩡한 정신에 직장 사장님과 어깨동무를 하고, 상사를 껴안았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어제의 응원마당에서 겪은 화목만 생각했을 뿐, 예로 절제하는 분별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미친 사람이 된 것이다.
 
군대는 전우애로 화합하기 위해 군가를 부르고(和),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경례(禮)를 한다. 화합이 아무리 좋은 덕목일지라도 예의 절제가 따르지 않는 화합은 실행할 바가 못 된다. ‘귀한’ 자식과 ‘놀아주는’ 부모님들도 항상 ‘예(禮)’ 가르치기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