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적 상황에 원론적 대답"
윤 대통령은 전날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해당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인도적 기준에서 국제사회가 모두 심각하다고 여길만한 중대한 민간인 살상이나 인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가정적인 상황에 대해 한국도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나 하는 점을 가정형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국내법에 바깥 교전국에 대해서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다만 우리가 자율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 사회 대열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한ㆍ러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ㆍ관리해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균형을 맞춰서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北에 무기 주면 좋겠나" 반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북한의 손에 있으면 한국이 뭐라 할지 궁금하다"며 북ㆍ러 무기 거래까지 암시하며 위협했다.
이 같은 러시아의 반발에 대해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인터뷰를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며 맞받아쳤다. 아직 외교 채널을 통한 러시아 측의 공식 항의는 없었다고 한다.
美 "한국 기여 환영"
빅터 차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 부소장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탄약 보유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생산 능력도 뛰어나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나토 회원국의 재고를 한국이 채우는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침 백악관은 같은 날 3억 2500만 달러(약 4319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용 탄약과155㎜·105㎜ 포탄, 대전차 미사일 등이 포함됐다. 155㎜ 탄약의 경우 한국이 미국에 50만 발을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상회담서도 요구 전망
다만 정부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군사적 지원은 가능성만 열어두고, 일단 인도적 지원, 특히 재건 활동에 방점을 찍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인도적, 재정적 지원을 올해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 필요하면 우크라이나 재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에 건설·디지털·IT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재건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對)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미ㆍ러의 입장 대립이 의도치 않게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한국이 이런 상황 자체를 레버리지로 적절하게 활용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러시아의 반발을 대미 설득의 레버리지로 일부 활용할 수도 있다"며 "가정적 상황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러시아의 현재 태도를 볼 때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도적 지원, 재건 노력 등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