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8월까지 연장, 세수보다 물가 더 급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3.04.19 00:01

수정 2023.04.1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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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18일 현재 적용 중인 유류세 인하 조치(휘발유 25%, 경유 37%)를 8월 말까지 4개월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세금은 거둬야 하는데, 물가는 틀어막아야 하는 갈림길에서 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종료하는 유류세(교통·환경·에너지세 등) 인하 조치를 8월 말까지 넉 달 더 연장하기로 했다. 최근 ‘세수 펑크’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 부담을 우선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태정 기재부 환경에너지세제과장은 “주요 산유국 협의체(OPEC)가 원유 감산을 발표한 이후 국제유가가 올라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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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를 시행 중이다. 지난해 4월까지 20%를 깎아줬고, 물가 부담이 커지자 같은 해 7월엔 인하 폭을 37%로 확대했다. 같은 해 12월엔 휘발유 인하율을 다시 25%로 축소했지만, 경유 인하율은 37%를 유지하고 있다. 18일 기준 L당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1660원, 경유값은 1547원이다. 유류세는 각각 L당 615원, 369원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두고 고심한 건 세수 부족을 우려해서다. 기재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로 세수가 5조5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올해 세수 결손은 최소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세수 결손이다.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징수가 회복세를 타야 ‘세수 펑크’를 막을 수 있는데 전망이 어둡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내려앉은 데다 자산시장과 기업 실적, 내수 경기 모두 빠르게 얼어붙고 있어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때문에 기재부 안팎에선 인하 조치를 연장하되 인하 폭을 줄이는 방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정부는 인하 폭조차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연장하기로 했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 물가 부담을 우려한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2%로 둔화시킨 ‘일등공신’은 1년 전보다 14.2% 하락한 석유류 가격이었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유류세마저 환원할 경우 가까스로 틀어막은 물가가 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름값은 물가의 ‘바로미터’로 여길 만큼 소비자가 민감하게 여긴다”며 “정부가 유류세 환원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와 물가 안정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물가 안정을 선택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 연장 효과가 정부 기대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올 초 1500원대로 안정세를 보였던 국내 기름값이 OPEC가 최근 감산 계획을 발표한 뒤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지난 5일 1600원 선을 돌파한 이후 1700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서울 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1745.37원)는 이미 1700원 선을 넘어섰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재연장되는 다음 달 이후 기름값이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 인하 폭이 지금과 변함이 없는 데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과 직결된 국제유가가 상승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세수 확보에는 비상이 걸렸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는 “나라 곳간을 지키는 취지의 ‘재정 준칙’ 마련도 지지부진한데 세수 펑크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유류세 인하 정상화)를 정부 스스로 하나 줄였다”며 “경기 둔화 상황에서 증세로 돌아설 수 없는 만큼 재정 누수가 없는지 점검해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