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책이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안다. 책은 잔소리꾼이라기보다 속 깊은 수다쟁이에 가깝다. 혹은 대신 여행을 다녀와 종알종알 이야기를 들려주는 탐험가 같기도 하다. 행선지는 다양하다. 진짜로 먼 나라일 때도 있고, 지난 세기일 때도 있고, 다른 직업일 때도, 심지어 감옥일 때도 있다. 독서의 행복이란 곧 디뎌보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내 안으로 흘려보내 나의 구성 성분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데 있다.
이러한 만남은 바느질과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에 다른 사람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다만 존재한다.”(한정원, 『시와 산책』) 혹은 길 잃기와도 비슷하다. “길을 잃으면 나를 잃고 (그런 두려운 처벌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 이때 책이란 비로소 다름의 축복을 내리는, 지겹고 어리석은 ‘나’를 흔들고 뒤섞는 신과 같은 존재다. 책을 읽을 이유를 반드시 꼽아야 한다면,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책을 통해 잠시나마 다른 내가 될 때야 겨우 ‘나’의 삶에 질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