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생명체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총을 집어든 고3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지난달 프랑스 최대 드라마 시상식 ‘시리즈 마니아’에 한국 드라마 중 유일하게 초청 받았다. ‘시리즈 마니아’의 프로그래밍 매니저 카를로 파시노는 ‘방과 후 전쟁활동’에 대해 “한국 고등학생의 일상이라는 현실적 소재를 밀리터리·SF와 결합해 신선하게 해석했다”고 평가했다.
10대의 일상을 소재로 한 학원물이 진화하고 있다. 입시와 청춘 로맨스가 학원물의 전부였던 시대는 지났다. SF·좀비물·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면서 복합장르로 변모하는 추세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보는 보건교사 안은영이 학교 내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가는 ‘보건교사 안은영’(2020, 넷플릭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지금 우리 학교는’(2022, 넷플릭스, 이하 ‘지우학’) 등이 대표적이다. ‘약한 영웅’(2022, 웨이브)은 기존 학원물에 범죄물·액션물의 요소를 잘 버무려 호평을 받았다.
복합장르의 학원물이 쏟아지는 데는 제작 환경의 변화가 큰 몫을 했다. 인기가 검증된 웹툰과 소설이 영상화되는 게 대세로 자리잡으면서다. 하일권 작가의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보라색 괴생명체 구체는 드라마에서 더 실감나게 표현됐고, 정세랑 작가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속 젤리는 드라마에서 알록달록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됐다
‘방과 후 전쟁활동’을 제작한 송진선 스튜디오드래곤 CP는 “웹툰 원작을 구매하고 드라마 제작을 마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건, 복합장르 제작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제는 복합장르를 소화할 작가와 연출진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상대적으로 제작이 쉬운 웹툰·소설에서는 복합장르물을 많이 다뤘지만, 드라마에는 제작비와 기술력이 따라줘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면서 “제작비 감당이 가능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등장과 영화 쪽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VFX(특수시각 효과) 기술력이 바탕이 되면서 복합장르가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지우학’은 극 초반 등장하는 학교폭력 문제와 그것을 방치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건교사 안은영’은 아이들에게 평범한 삶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담아낸다. ‘방과 후 전쟁활동’에선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전시 상황이 되면서 성동고 3학년 2반에 군 소집 명령이 떨어지는데, 입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조건에 학생들은 군사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학생들이 불나방처럼 오로지 입시에만 매몰돼 있는 세태를 비꼰 것이다. 괴생명체의 위협으로부터 구출된 한 학생이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한 어른들의 말대로 현장에 남아있었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
좀비와의 싸움, 괴생명체와의 전투 등을 거치며 아이들이 한층 강해지고 성장해가는 것도 K-학원물의 특징이다. ‘방과 후 전쟁활동’의 송 CP는 “10대에 느끼는 감정은 어디로든 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어른들도 그 과정을 거쳤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