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대피소의 밤을 보낸 주철씨와 어머니는 아침이 되자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다시 집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완전히 불에 타 주저앉은 집의 흔적들뿐이었다. 차씨 남매가 어릴 적 감을 따 먹던 나무, 감자·옥수수를 심은 밭, 수십 년 간장을 보관해두던 장독대까지 모두 불탔다. 수십년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된 걸 본 안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고 세상에. 어떻게 전부 다 재로 만들어버렸네”라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안씨는 60여 년 전 남편과 함께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3남 1녀를 낳아 길렀다. 남편이 떠난 뒤부턴 고양이 ‘에노’와 함께 이 집에서 밥을 먹고, 산책하고, 잠을 잤다. 그러나 산불은 순식간에 주변을 삼켰고, 손 쓸 틈도 없이 집 뒤편 대나무 숲까지 붉게 물들였다. 놀란 안씨는 맨몸으로 겨우 화재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만큼 긴박했다. 대피 당시에도, 화재 다음날 다시 집에 와서도 애타게 고양이를 찾았지만,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딸 혜숙씨는 “아버지와 사별 이후 에노는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며 “어제 통화할 때도 ‘고양이를 두고 왔다’며 안절부절못하셨다”고 말했다.
인근 안현동 마을에선 성 모양의 2층짜리 펜션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새카맣게 불타 있었다. 순간 강한 바람이 불자 지붕 위에 있던 철판이 통째로 날아가 인근에 주차된 자동차를 덮쳤다. 50m가량 떨어진 목조 펜션은 아예 지붕이 주저앉았다. 펜션 뒤쪽 한옥도 모두 불타 마을 전체가 마치 폭격을 맞은 듯했다. 한옥 주인 최호영(75)씨는 “맨몸으로 대피했다가 다시 집에 와보니 집이 다 탄 상태였다”며 “40년 넘게 산 곳인데 추억이 담긴 사진 한장 못 건졌다”고 했다. 옆에 있던 최씨 부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발화 지점인 난곡동 주변은 농작물 피해도 심각했다. 집 지붕에 불티가 날아들어 피해를 본 심엄섭(65)씨는 “비탈에 키우던 명이나물이 까맣게 타버렸고, 키위나무도 연기를 4시간 이상 쐐서 키위가 열리기나 할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산불 온도가 1100~1200도에 달하는 만큼 방화문을 쓰고 창문도 삼중 구조로 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산불로 주택과 펜션 등 100여 채가 전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