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입주 5년 차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9510가구) 단지 내 상가. 지하철 8호선 송파역이 붙은 역세권이지만, 대로변 상가(A동) 1층엔 점포 10여 개 중 5곳이 비어 있었다. 굳게 닫힌 출입문마다 ‘임대 문의’라는 팻말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지하 1층은 훨씬 썰렁했다. 특히 지하철역과 아파트를 잇는 통로 양옆으로 상가 23칸 중 12칸이 공실이었다. 간판이 걸려있지만, 불이 꺼진 점포도 많았다. 이 아파트 단지 내 상가는 총 617개 점포 중 약 60개(공실률 9.7%)가 비어 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입주민이 3만명이면 뭐하나, 돈 쓰는 사람은 별로 없고 임대료는 비싸다 보니 못 버티고 문 닫는 가게가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가 요즘 고배를 마시고 있다. 서울 강남권 ‘노른자위’ 입지라고 다르지 않다. 입주한 지 3~4년이 지나도록 공실이 있는가 하면, 신규 분양이나 경매에 나온 상가를 찾는 사람도 줄었다. 아파트 입주민이라는 고정 수요 덕에 안정적 투자처로 꼽혔던 예전과는 다른 모양새다.
신규 분양 성적도 미지근하다. 3375가구 규모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의 단지 내 상가(개포자이스퀘어)는 지난달 28일 25개 점포에 대한 입찰 결과 30%가량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최근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2990가구) 단지 내 상가도 분양 117개 점포 중 50여 개가 미계약 상태다.
경매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월 강남구 대치동 ‘대치SK뷰’ 단지 내 상가 1층 물건은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23억3000만원)의 64.4%인 15억원에 낙찰됐다. 응찰자는 한 명에 그쳤다.
헬리오시티 1층 대로변 상가(전용 23㎡ 기준)의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 350만~400만원이다. 이 상가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 중인 A씨는 “그나마 월세가 1년 새 100만원 내렸는데도 주변 시세보다 비싸다”며 “고금리와 경기 침체까지 겹쳐 월세를 빼고 대출 이자, 인건비를 내고 나면 수익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한된 입점 업종도 원인으로 꼽힌다. 대개 단지 내 상가엔 편의점과 부동산 중개업소, 세탁소, 미용실 등이 들어서는데, 최근엔 중개업소 비중이 압도적이다. 헬리오시티 단지 내 상가(A동) 1층의 경우 총 99개 점포 중 52개가 중개업소로 채워졌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입주민이 대형마트·복합쇼핑몰로 원정 쇼핑을 가면서 단지 내 상가에 대한 의존성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당분간 전망도 밝지 않다. 상가가 분양·임대 모두 대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고금리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수익률도 부진하다. 지난해 4분기 강남권 집합상가 수익률은 연 0.85%로, 1년 전(2.09%)보다 낮아졌다. 시중은행 예금금리(연 3%대 중반)에 크게 못 미친다. 선종필 대표는 “코로나19에 이어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상가 건물주, 자영업자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