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불행이세

중앙일보

입력 2023.04.0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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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중국어

“중국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선생의 사망(去世)에 애도를 표시하며 유가족에게 위문을 전한다.”  지난달 14일 왕원빈(王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내외신 브리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추모했다. “오에 선생의 많은 작품이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객관적인 역사에 대한 수호, 인류 평화에 대한 추구를 반영했다”고 칭송했다. 다만 노벨상 수상자의 죽음에는 격이 높은 표현인 ‘서세(逝世·스스)’란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으련만, 그보다 낮은 ‘거세(去世·취스)’란 단어를 사용한 게 마음에 남았다. ‘서세’는 정치지도자나 만인의 존경을 받는 석학·현인의 죽음을 높이 부르는 말로 한국어로 옮기면 서거(逝去)에 해당한다.
 
지난 1일 중국의 장·차관급 관료 두 명이 같은 날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았다. 다음날 부고(訃告) 두 건이 인터넷에 퍼졌다. “장훙싱(張鴻星) 중국공산당 충칭시 위원회 상무위원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不幸離世·불행이세). 55세.” “뤄즈쥔(羅志軍) 전 중공 장쑤(江蘇)성 서기가 병으로 베이징에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72세.” 모두 죽음을 ‘이세(離世·리스)’로 표기했다.
 
중국 내부 정치에 밝은 홍콩 성도일보는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뤄즈쥔과 장시(江西)성에서 잔뼈가 굵은 장훙싱의 석연찮은 죽음을 크게 보도하면서 ‘불행이세’ 네 글자에 주목했다. 고위 간부가 정상적으로 사망하면 ‘서세(逝世)’로, 비정상적인 죽음은 ‘이세(離世)’로 적는다며 중국식 부고의 용어 사용법을 설명한 뒤 “우울증으로 생명을 가벼이 여겼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간 중국 고위 간부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죽음이 잦다. 2019년 11월 충칭시 부서기 런쉐펑(任學鋒), 2021년 9월 후난(湖南)성 선전부장 쩡완밍(曾萬明), 2022년 5월 톈진(天津)시 시장 랴오궈쉰(廖國勳)의 부고에 모두 ‘불행이세’ 네 글자가 적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측근의 체포, 좌천 등의 풍문만 나돌았다.
 
중국식 부고의 또 다른 특징은 늑장 보도다. 3월 26일자에는 지난해 12월 24일 숨진 차관급 간부의 부고가 92일 만에 실렸다. 올 1월부터 이달 5일까지 인민일보 4면에 게재된 장·차관급 이상 고위직 55명의 부고는 사망 시점과 게재일의 시차가 천차만별이었는데 평균해보니 40일 정도였다. 코로나19로 지각 부고가 몰린 것만도 아니었다. 그 전에도 부고 보도는 줄곧 늦었다. 중국에서 정치인의 부고는 늘 알리기 조심스러운 정보란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