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경제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다. 그 사례가 요즘 미국이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정리해고를 집계하는 레이오프스(Layoffs.fyi)에 따르면 올 들어 5일 현재까지 556개 기업이 16만7000여 명을 해고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아마존은 지난해 11월 이후 2만7000여 명을 내보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는 2만 명 이상을 해고해 직원 수의 25%를 줄였고, 구글은 1만2000명(전체 직원의 6%)을 해고했다. 경영 위기에 처해서가 아니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조직 효율화를 위해서다. 기이한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대량해고가 일어나는데도 미국의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이란 점이다(2월 3.6%). 그 이유 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성이다. 시장의 한편에선 해고가, 다른 한편에선 신규 채용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비롯한 노동개혁은 한국 경제의 오랜 과제다. 최근 근로시간 개편이 난관에 부닥쳤다. 사실 주 52시간제 개편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과격하게 도입한 이 제도로 법정 근로시간은 단축됐지만, 일자리와 소득도 함께 사라지는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경직된 주 52시간제를 기업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손봐야 한다는 데 이론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개편 논의는 어느 순간 근로시간이 늘어나는 것처럼 왜곡되고 비틀려버렸다. 한국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928시간(2021년 기준)으로 OECD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압도적으로 길다. 근로시간 연장이란 프레임에 걸리는 순간 헤어나오기 어렵다. 정부의 서툰 일솜씨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주 52시간제 개편이 수렁에 빠진 것도 유감이지만, 노동개혁의 동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많은 이가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만 완수해도 한국 경제에 획기적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제대로 달리기도 전에 엎어진 꼴이 됐다. 노동개혁의 핵심 난제는 아직 손도 못 댔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막는 까다로운 해고 규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비정규직 간의 차별, 피라미드식 계급구조처럼 근로자를 옥죄는 원청·하청·재하청 체제 등 바로잡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대로면 현 정부에서도 노동개혁은 물 건너가게 된다.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을 이렇게 흘려보낼 것인가.
부작용 입증된 주52시간제 개편
장시간 근로 프레임에 걸려 난항
노동개혁 핵심 난제는 손도 못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