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살해 후 자살’ 아동 피해
당시 언론은 ‘아이 셋과 투신한 엄마의 눈물 사연’과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여론도 자녀 살인을 비판하기보다 죽을 수밖에 없던 고통스러운 상황에 연민을 보냈다. 2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18일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40대 가장이 아내와 세 자녀를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다. 부부가 겪은 경제적 고통에 초점이 맞춰지며 자녀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는 희석되는 분위기다.
벼랑 끝에 몰려 극단 선택한 부부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을 바라보는 인식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참변에 이른 비극에 감정을 이입하고, ‘동반자살’ 같은 표현으로 동정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에 앞서 자녀를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살인 행위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의 평균 나이는 5.8세
“왜곡된 망상적 가족주의 원인”
감정 이입이나 동정 자제해야
“비속살인죄 신설하자” 움직임
“왜곡된 망상적 가족주의 원인”
감정 이입이나 동정 자제해야
“비속살인죄 신설하자” 움직임
비극인가 살인 범죄인가
주민들은 단란했던 일가족의 참극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듯했다. 한 주민은 “평범한 가족이었는데 도저히 실감이 안 난다”며 “크게 빚을 졌다는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극단 선택을 할 정도면 그 고통이 오죽했겠느냐”고 가슴을 쳤다. 주민들은 “아이들의 목숨까지 빼앗은 건 잘못”이라면서도 A씨 가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의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건 발생 후 일주일 동안의 기사 80여건을 분석해보니 초기엔 ‘일가족 숨진 채 발견’과 같은 발생 보도에 이어 ‘가장이 살해 후 극단선택’ 같은 사건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 후엔 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A씨의 경제적 고통에 관심이 쏠리더니, 마지막에는 살해된 딸이 쓴 “엄마 사랑해”라고 적힌 그림이 알려지며 동정 여론이 커졌다.
사건을 보도하는 동안 다수 언론은 일가족 참변 또는 참극이라고 지칭했다. 정확한 표현인 ‘살해 후 자살’이라고 적시한 곳은 많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발표한 경찰의 시각도 비슷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18일 오후 2시쯤 기자단에 처음 관련 소식을 공유했는데, “가장이 가족 4명을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한 걸로 추정한다”면서도 “미추홀구 일가족 변사사건”이라고 지칭했다.
문준규 미추홀경찰서 형사과장은 “살인사건이 벌어져 곧바로 조사했고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며 “경찰이 수사하는 범죄 항목에 ‘살해 후 자살’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반 자살 사건과 달리 ‘살해 후 자살’ 데이터가 별도로 집계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통계를 작성하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계속되는 가족 잔혹사
지난해 6월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 모양(사망 당시 10세)도 ‘살해 후 자살’의 피해자다. 경찰 수사 결과 부모가 조 양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차를 타고 바다로 입수해 익사했다. 당시 경찰은 “우울증으로 일가족이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양의 피살 사실보다 자살에 이른 부모의 사연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비극이 계속되는 이유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 인식”(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탓이 크다. 김 교수는 “부모·자녀 사이의 공고한 위계 구조가 아들·딸의 생명마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며 “부모 없이 살아갈 자녀의 미래가 불행할 거라는 가족주의적 망상이 범행의 가장 큰 동기”라고 설명했다.
존속살인은 있고 비속살인은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비속살인은 오히려 감형 요소였다. 2020년 확정판결이 난 아동학대치사 사건 15건 중 11건은 피의자가 징역 7년 이하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양부모의 학대로 입양 271일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2020년)을 계기로 2021년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비속살인의 형량도 무거워졌다. 같은 범죄라도 형법이 아닌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되면 존속살인처럼 가중처벌 된다.
이와 함께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은 2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이수정 교수는 “자살을 마치 자기희생처럼 생각하고 누군가 대신해 한을 풀어줄 거라고 믿는데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 살해 역시 자식들에게 닥칠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으로 오판하는데, 자살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구에선 자녀를 별도 인격체로 인정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이 1명에 미치지 못하는 일본은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전체 살인사건 대비 친족살해 비율은 2010년 30.3%에서 2017년 55%로 늘었다(일본 경찰청). 2016년 카나가와현 연구에서는 169건의 살인사건 중 76건이 가족 ‘살해 후 자살’이었다. 이 중 41건이 자녀 살해였다.
일본에선 이를 ‘무리신주(むりしんじゅう)’라고 부르는데, 일본도 한국처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큰 가부장적 성향이 짙다. 닐 웹스데일 미국 애리조나대 가정폭력센터장은 “‘살해 후 자살’ 피의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을 실천하는 이타적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Familicidal hearts』).
반면 서구에서는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일이 드물다. 동반자살이란 개념이 따로 없고 그저 아동학대와 ‘자녀살해(filicide)’의 한 범주로 볼 뿐이다.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녀를 별도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에선 ‘자녀 살해 후 자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도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선 이를 ‘무리신주(むりしんじゅう)’라고 부르는데, 일본도 한국처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큰 가부장적 성향이 짙다. 닐 웹스데일 미국 애리조나대 가정폭력센터장은 “‘살해 후 자살’ 피의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을 실천하는 이타적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Familicidal hearts』).
반면 서구에서는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일이 드물다. 동반자살이란 개념이 따로 없고 그저 아동학대와 ‘자녀살해(filicide)’의 한 범주로 볼 뿐이다.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녀를 별도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에선 ‘자녀 살해 후 자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도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