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26일 밤(현지시간) 텔아비브·예루살렘·하이파·베르셰바 등 이스라엘 150여 지역에서 최대 2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텔아비브의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철제 바리케이드를 부수며 거칠게 항의했다. 일부 시위대는 도로 한복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 관저 밖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 사법 무력화 철회를 요구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이날 항공기 이륙이 중단됐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민의 통합과 책임을 위해 입법 절차를 즉각 중단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약 80만 명의 회원을 둔 이스라엘노동자총연맹 의장은 “모두가 함께 이스라엘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을 때”라며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다. 이스라엘 의사연합도 사법 정비 입법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28일부터 의료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개혁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이 사법 심사를 통해 의회 입법을 막을 수 없고, 다른 법률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결정도 국회(크네세트)의 단순 과반 의결만으로 뒤집을 수 있다. 또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조종할 수 있도록 해 임명에 대한 정부의 개입 여지를 늘렸다.
야당과 법조계·시민단체 등은 이를 법원과 검찰을 무력화시켜 정부에 종속시키는 ‘사법 쿠데타’로 보고 있다. 특히 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여러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 중인 네타냐후 총리가 ‘셀프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네타냐후 방탄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안 그래도 삐걱거리는 네타냐후 연정에 위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 때 네타냐후의 리쿠드당(32석)은 ‘독실한 시오니즘’ 등 극우 정당과 우파 블록을 형성해 크네세트 120석 중 과반인 64석을 차지했다. 야권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갈란트 장관 해고에 대해 “최악”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극우 성향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등은 입법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자칫 극우 동맹이 반란을 일으키면 연정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예루살렘 소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의 기드온 라하트 선임연구원은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필요 때문에 극우와 동맹을 맺었지만, 그가 통제권을 쥐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네타냐후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라고 말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사법 개혁이 필요하지만, 집안이 불타고 국가의 분열이 커질 때 우리의 임무는 이것부터 막는 것”이라며 표결 연기를 촉구했다.
이스라엘 시위가 격화하자 미국 백악관은 아드리엔 왓슨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우리는 현재의 이스라엘 상황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면서 “타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주의 사회는 견제와 균형에 의해 강화되며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는 가능한 한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추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긴밀한 관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요한 중동 동맹국인 이스라엘에 대한 공개 비판을 꺼려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성명은 매우 신랄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