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21) 난세의 여포, 물에 잠긴 하비성에서 죽음을 맞다

중앙일보

입력 2023.03.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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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부하 장수인 고순, 장요와 함께 관우와 장비의 영채를 공격했습니다. 유비가 지원했지만 여포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유비는 기병 수십 명만 이끌고 소패성으로 달아났습니다. 여포가 바짝 추격했습니다. 다급해진 유비가 적교(吊橋)를 건너는 사이 적토마를 탄 여포도 번개처럼 적교를 건너왔습니다. 성문을 무사통과 한 여포는 종횡무진 화극을 휘둘렀습니다. 유비군은 모두 사방으로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유비도 가족을 버려둔 채 혼자 성문을 빠져나와 달아났습니다. 여포가 유비의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미축이 집을 지키고 있다가 여포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듣자 하니 대장부는 남의 아내를 해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장군과 천하를 다투는 사람은 조조입니다. 유비는 늘 원문 밖 극을 쏘았던 은혜를 생각하고 감히 장군을 배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부득이해서 조공의 편이 된 것이니 장군께서 가엾게 보아 주소서.

 

나와 유비는 오랜 친구인데 어찌 차마 그의 처자를 해치겠는가.

 
여포는 미축에게 유비의 식솔을 데리고 서주로 가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미축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모종강이 삭제한 나관중본의 내용을 알아볼까요?
 

여포는 미축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검 한 자루를 내리고, 문으로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목을 치라고 했다.

 
이 한 문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큽니다. 여포의 심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유비는 손건을 만나서 함께 조조에게 가기로 합니다. 큰길은 위험하니 오솔길로 숨어다니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하며 허도로 향했습니다. 하루는 사냥꾼인 유안의 집에 묵게 되었습니다. 유안은 존경하는 유비에게 맛있는 고기로 대접하고 싶었지만 잡아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를 죽여 이리 고기라고 속여 유비를 배불리 대접했습니다. 조조를 만난 유비는 함께 여포를 잡으러 갑니다.
 

진등. [출처=예슝(葉雄) 화백]

 
여포는 진규와 진등의 말을 곧잘 믿었습니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보필한 진궁의 충고는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진등의 속임수에 놀아난 여포는 서주와 소패를 잃고 하비성으로 달아났습니다. 조조가 여포를 회유하려 하자 진궁이 활로 조조의 해 가리개를 맞혔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휴전은 없고 승패를 가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진궁은 여포에게 조조군이 피로할 때 속공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여포도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여포의 처 엄씨가 가로막았습니다.
 

조조를 향해 활을 쏘는 진궁. [출처=예슝(葉雄) 화백]

 

당신은 성을 남에게 맡기고 처자까지 버려둔 채 외롭게 군사를 이끌고 멀리 나가신다는 말씀이옵니까? 만일 하루아침에 변이라도 당한다면 제가 어찌 장군의 아내이겠나이까?

 

내가 생각해보니 멀리 나가는 것보다 여기서 굳게 지키는 것이 낫겠소.

 
여포는 아내의 말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진궁이 조조의 양도(糧道)를 끊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여포도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엄씨가 통곡하며 막았습니다.
 

장군께서는 앞길이 만 리 같으니 저 같은 것은 생각지도 마옵소서.

 
여포의 후실(後室)인 초선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장군께서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시려거든 가벼운 차림으로 밖에 나가지 마옵소서.

 
정에 약한 여포가 밖으로 나와 진궁에게 말하길,
 

조조의 군량이 온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오. 조조는 속임수가 많으니 아직은 내가 자진하여 움직일 때가 아닌 것 같소.

 
모종강은 유안이 굶주린 유비를 대접하기 위해서 아내를 죽인 것에 대해서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여포가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차마 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 어리석었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의 도리로 보자면 유안은 살인자요, 여포는 애처가일 뿐입니다.
 
여포는 원술과 손잡기 위해 딸을 보내 혼인을 시키고자 했으나 유비의 철통포위망에 걸려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포는 철옹성인 하비성에서 수비만 하며 처첩들과 함께 술만 마셔댔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곽가의 제안대로 기수(沂水)와 사수(泗水)를 터서 하비성을 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위기를 느낀 여포는 금주령을 내리고 단속을 시작했습니다. 부하 장수 후성이 잃어버렸던 말을 찾은 기쁨에 술을 빚어 여포에 바쳤다가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분한 마음에 동료 장수들과 함께 여포를 배반하기로 모의하고 적토마와 화극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조조와 내응해 여포를 사로잡았습니다.
 
여포의 참모이자 조조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었던 진궁은 분연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조조도 그의 노모와 처자들이 편히 살도록 해줬습니다. 하지만 여포는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조에게 천하를 평정하자고 했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공께서는 정원과 동탁의 일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네놈이 가장 믿을 수 없는 놈이구나! 귀 큰 놈아! 원문 밖 극을 쏘던 때를 잊었느냐?

 

유비를 꾸짖으며 처형당하는 여포. [출처=예슝(葉雄) 화백]

 
여포가 분함을 못 이겨 큰소리를 쳤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여포는 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양부(養父)인 정원과 동탁을 배신했던 일과 자신이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죽는 꼴이 낡은 영사기의 필름처럼 겹쳐지지는 않았을까요.
 
유비가 조조에게 여포를 죽이라고 한 장면을 평한 시 한 편이 멋집니다. 
 
사람 먹는 주린 범은 단단히 옥조여야 하니 傷人餓虎縳休寬
동탁과 정원의 피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董卓丁原血未乾
유비는 아비 잡아먹는 여포인줄 이미 알았건만 玄德旣知能啖父
어찌 살려 두어 조조를 잡아먹게 하지 않았나 爭如留取害曹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