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까지 원고 고친 尹…전례 드문 '23분 국민설득' 전말

중앙일보

입력 2023.03.22 11:23

수정 2023.03.2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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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한·일 관계 복원의 중요성을 피력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평소 간결한 원고를 선호했던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7500여자에 달했고, 23분간 이어졌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된 것도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에게 세세히 설명해 드리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기존 형식과 달랐던 만큼, 윤 대통령의 발언 준비 과정도 치열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하나하나 뜯어고치며 논리를 다듬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23분가량 이어진 윤 대통령의 연설은 한 ·일 관계에 집중됐다. 사진 대통령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전날인 20일 오후 6시 30분부터 발언 원고를 들고 수석 및 참모들과 독회(讀會)를 시작했다. 이미 수차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정된 원고였지만 독회는 3시간 30분가량 이어져 저녁 10시에 끝났다. 윤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참모진에게 “감정적 접근을 자제하라”“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피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라”“맹목적 반일주의를 경계하라”는 취지의 주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회의 석상에선 과거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를 바라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결단도 언급됐다. 2003년 일본을 국빈방문해 양국 간 협력을 강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도 원고 초안엔 포함됐으나 최종적으론 빠졌다고 한다.  
 

2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방일 결과 모두발언을 생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은 독회 뒤 수정된 원고를 들고 관저로 퇴근해 새벽까지 수정 작업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원고를 다시 전달한 시간은 21일 아침 7시경. 오전 9시부터 윤 대통령과 수석들이 다시 모여 문구를 세세히 뜯어봤고, 오전 10시에 열린 국무회의 직전에서야 최종본이 탈고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상 윤 대통령은 새벽 4시면 일어나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며 “관저에서 밤새 원고에 담긴 한·일 관계 내용을 다듬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수정 지시에 따라 21일 국무회의 발언엔 “지난 24년간 한·일 양국 기업이 추진한 해외 공동 사업은 약 270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매국적인 외교라는 극렬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 덕분에 삼성·현대·LG·포스코와 같은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강제징용 피해자) 7만 8000여 명에 대해 약 6500억 원을 정부가 재정으로 보상해 드렸다”와 같은 구체적 수치 등이 포함됐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과거 맹목적 반일주의를 넘어섰을 때 한국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었다”며 “한·일 관계에 있어선 미래를 바라보는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