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수선화와 튤립 사이

중앙일보

입력 2023.03.22 00:35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3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의 시간을 우리 집 정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선화와 튤립 사이’다. 붓을 세운 듯 도톰한 수선화가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튤립은 수선화보다 큰 잎을 토끼 귀처럼 열심히 키워낸다. 수선화가 핀 뒤 튤립도 피어나는 딱 2주 정도의 시간이다.
 
이 사이 정원에선 많은 일이 벌어진다. 며칠 전부터 처마 밑에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작은 짹짹거림이 들려온다. 남편이 나무로 새집을 만들어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는데, 여기에 참새가 들락거리기 시작한 걸 몇 년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집 단장을 끝내고 이미 새끼를 낳은 게 틀림없다. 암수 한 쌍이 정말로 부지런히 뭘 물어다 바친다. 내가 목격한 바로는 새 중에 참새와 박새의 새끼 부화가 늘 이렇게 가장 먼저고, 5월이 돼야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나름 새들에게도 시간 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수선화와 튤립 사이, 정원엔 또 다른 주인공도 등장한다. 바로 벌이다. 수선화가 필 무렵부터 벌들의 비행이 눈에 띄게 분주해진다.
 

수선화

국제표준의 날짜 선이 생기고, 세계가 단일한 시간제를 선택한 시점은 1884년이다. 그 전까지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하루를 세는 단위가 달랐고, 계절을 구별하는 방법도 달랐다. 세계가 경제적으로 연결되다 보니 이런 제각각의 시간 단위는 엄청난 혼란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통일된 시간의 채택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반 바퀴를 넘나들어도 혼란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정말 국제표준 시계처럼 흘러가는 것일까.
 
적어도 나의 정원에서 시간은 다른 계산법을 갖는다. 수선화와 튤립 사이, 이 시간은 정원에서 곧 피어날 수선화를 위해 지지대를 세워주는 시간이다. 수선화꽃은 머리가 커서 활짝 피면 그 무게로 고꾸라지곤 한다. 이걸 피하려면 지금쯤 잔 나뭇가지로 사이사이에 지지대를 꽂아 무거운 꽃이 잘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게 좋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