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폭력을 피해 엄마 품에 안겨 집을 나섰던 4살 여아가 숨졌다. 딸을 죽음으로 몬 것은 엄마의 방임과 폭력이었다. 가출한 이들 모녀는 남의 집에 얹혀살았다. 모녀를 받아준 집주인이 엄마를 성적으로 착취하며 돈을 가로채고, 딸 학대를 방관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14일 부산 동래구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이 분주했다. 이날 오후 7시40분쯤 여자아이가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의료진 처치에도 아이는 결국 숨을 거뒀다.
아이가 4살인 걸 확인한 의사는 매우 놀랐다. 아이 몸무게는 7㎏도 되지 않았다. 신장은 87㎝로 또래 평균(키 104.6㎝ㆍ몸무게 17.1㎏)에 한참 못 미쳤다. 숨진 아이 얼굴 곳곳에 상처가 있었고, 가슴엔 멍 자국이 남았다. 의료진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신고했다.
6개월간 한 끼 먹은 딸, 폭행에 눈도 멀었다
경찰 조사에서 친모 A씨(20대)가 실제 아이를 학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A씨는 본래 경북에 살다가 2020년 9월께 남편 폭행에 못 이겨 아이를 안고 부산으로 피신했다. 평소 온라인 카페에서 가깝게 교류하던 B씨(20대)가 부산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젖을 뗀 아이는 6~15개월 사이 이유식과 유아식을 먹는다. 이 카페는 월령별로 섭식 가능한 음식과 반찬 등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A씨는 비슷한 또래 아이 엄마로, 처지를 이해하는 듯한 B씨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B씨 집에 더부살이한 지 2년여 만에 A씨 딸은 숨졌다. 아이는 엄마 폭행에 눈이 멀다시피 한 상황에서 6개월간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는 딸을 폭행했고, 입에 거품을 무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는 데도 반나절이 지나도록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경찰은 딸 사망 가능성을 알면서도 학대한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살해죄를 적용해 A씨를 구속했다. A씨 모녀와 함께 살던 집주인 B씨도 조사했다. B씨는 “A씨가 아이를 때릴 때 모른 척한 적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당한 아이가 입에 거품을 무는 증세를 보일 때도 아동학대 사실이 알려질까 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게 B씨 진술이다. 함께 살았지만, 법적인 보호자는 아니어서 학대 사실을 드러내기 부담스러웠다는 취지다. 경찰은 B씨가 딸을 학대하는 A씨를 300번 넘게 방관한 것으로 파악했다.
친모 A씨와 집주인 B씨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 한 경찰은 두 사람 사이에 꽤 많은 돈이 오간 정황을 파악했다. 또 B씨에게 크게 의존하던 A씨는 B씨 강요에 못 이겨 성매매했다고 진술했다. 계좌 명세 등을 추적한 경찰은 A씨가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성매매를 했으며, 대금으로 받은 돈을 1억원 넘게 B씨에게 송금한 것으로 파악했다. 딸이 숨진 당일까지도 성매매했다고 한다.
경찰은 B씨가 이 돈을 생활비나 빚 갚는데 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경제적· 정서적으로 B씨에게 크게 의존했다. B씨는 이 점을 악용해 일종의 가스라이팅(세뇌)을 통해 A씨 심리를 장악하고 성매매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에겐 다른 친구가 없었으며, 가족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행위를 방조하고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B씨를 구속했다.
친모 A씨 재판은 부산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A씨는 재판에서 혐의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딸을 굶기면서도 자신은 외식하는 등 일상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일 결심공판에서 A씨는 “평생 딸에게 속죄하며 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은 “피해 아동이 느꼈을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부모,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인지 의문이 든다”며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