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에 있는 계열사로 발령이 나 이 집을 팔거나 전세를 놔야 하는데 준공 승인이 안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충남 서산 ‘서산 푸르지오 더 센트럴’아파트(10개 동, 861가구) 계약자 김모(45)씨의 얘기다.
김씨의 얘기처럼 이 단지는 입주를 시작한 지 석달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준공승인이 안 나 입주민이나 아직 입주를 못한 계약자 모두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단지는 임시사용승인만 난 상태라 소유권 이전 등기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 이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사람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또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안 돼 전셋집을 얻을 때 전세자금대출도 못 받는다. 대출이 막혔기 때문에 매매나 전세 모두 정상적으로 계약이 안 된다. 석달째 극심한 ‘입주대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단지 입주민이나 계약자들은 “3000명의 주민들이 재산권에 심각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서산시장에게 탄원서(643명 서명)를 내고, 국민권익위원회에도 피해를 호소했지만 변한 건 없다.
지난 5일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남구의 ‘개포자이프레지던스’의 경우 단지 내에 있던 유치원과 재건축 조합간의 법정타툼 결과 법원이 “준공 인가를 내 주면 안된다”는 유치원 측의 손을 일단 들어줬음에도 강남구청은 입주 개시일에 맞춰 부분 준공 인가를 내줬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준공 인가를 내 준다고 해서 유치원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파트 건물 바로 앞에 50m의 옹벽이 있는 경기 성남 판교 더 샾 퍼스트파크 단지에 대해서도 성남시는 부분 준공 인가를 내줬다.
그렇다면 서산 푸르지오 더 센트럴 단지는 도대체 무슨 큰 문제가 있길래 서산시청은 여지껏 준공 승인을 안 해주고 있는 걸까. 지난 2월초까지 서산시의 입장은 ‘선 민원 해결’이었다. 아파트 공사로 인해 영업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단지 밖에 있는 한 카센터의 영업 손실에 대해 아파트 사업 시행자가 ‘보상과 합의’를 통해 카센터 업주의 민원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기술 서기관은 카센터 현장을 살핀 후 지난 2월 10일 서산시에 전체사용승인을 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시행사가 카센터의 영업손실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니 보상 문제는 법적절차에 따라 진행하게 하고, 입주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준공승인은 빨리 내줘야 한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이후 서산시의 ‘준공허가 불가’이유는 바뀌었다. 카센터와 단지 사이에 새로 생긴 도로가 사업 인허가를 받을 때는 2차선 도로였는데 도로가 생긴 이후에 보니 그 폭이 인허가 당시보다 줄어들었다는 게 새로운 이유였다. 사업시행자 측이 ‘경미한 변경’이라고 주장하자 서산시는 충청남도 교통평가위원 5명의 의견을 받아오면 다시 검토한 후 준공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시행사는 “고원식 횡단보도, 방지턱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조건으로 2차선 도로 대신 중앙선 없는 도로를 개설해도 된다”는 교통평가위원 5명의 의견을 지난 주말 서산시에 전달했다.
서산시 관계자는 “20년 전 한 아파트 단지에 대해 미비한 점이 있는 상황에서 준공 허가를 내줬다가 서산시가 고생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서산시 관계자는 “시행사가 민원인인 카센터 측과 미리미리 원만하게 합의를 했다면 이렇게 준공 허가가 지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당 지역이 아닌 외지의 사업자가 해당 지역 일부 공무원에게 잘 못 찍히면 그 공무원은 천가지의 이유를 들어서라도 인허가를 미루거나 안 내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정설”이라며 “이 정부가 뿌리 뽑겠다고 강조하는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중 건설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관폭(官暴)’”이라고 지적했다.
서산 푸르지오 더 센트럴 단지는 충남 서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에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우건설이 지어 서산의 새 랜드마크(지역 대표단지)가 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