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한·일 관계 관련 국내 전문가 6인에게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 한계와 과제 등 측면에서 평가를 요청했다. 정상 간 셔틀외교 재개, 수출규제 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복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호응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점과 강제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한 국내적 갈등을 봉합하는 문제는 향후 풀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음은 전문가들의 총평. (가나다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기시다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한·일 양국이 연계해서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 정상회담 결과는 다소 추상적인 총론에 해당하고, 각론인 주요 현안에 대해선 앞으로 하나씩 풀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메시지다. 일본의 지방선거와 G7 정상회의 이후엔 기시다 총리 역시 국내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 테니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에 있어 일본이 호응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일본이 다음 달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있어서 전향적인 입장을 내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한국의 움직임에 스텝을 맞춰줘야 '탱고'가 되는데 완전히 엇박자가 나는 형국으로 이 분야에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다만 한국 입장에선 전반적으로 굉장히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 정상회담이었다. 일본의 '외교적 승리'라고도 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면서도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내용 등을 직접 이야기 하지 않았다. 과거를 직시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덮고 나아가자는 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ㆍ일 경제계가 조성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대해선 강제징용과 무관한 기금으로 여론을 호도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 기금에 일본 피고 기업이 참여한다는 보장도 여전히 없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당장은 일본의 다음달 지방선거 등을 고려해 기시다 총리가 전향적인 입장을 내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 셔틀 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조만간 일본 총리가 한국에 답방했을 때 역사 문제와 관련해 보다 진전된 입장을 낼 가능성이 있다. 공이 일본에 넘어갔으니 일본이 이제 화답할 차례다. "구상권 문제는 상정하지 않는다"는 양국 정상의 입장과 별개로 법리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책임교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수출규제를 해제했고, 우리는 지소미아를 정상화했다. 일종의 주고받기였는데, 북한의 핵 위협을 비롯해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 양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다. 특히 지소미아 정상화는 향후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 한·일 양국이 미사일 궤적 정보를 공유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가 연대해 국제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집단 안보’ 차원에서 한·일 양국은 최적의 파트너일 수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선 향후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강력한 의지로 정치적 결단을 내린 데 대한 국내의 갈등과 과제들을 봉합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하는 피해자와 유족을 설득해야 하고, 대일(對日) 저자세 외교라며 공세를 높이는 야당의 공세를 견뎌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만큼이나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