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어지럽히는 정치 현수막
정치의 노세보 효과는 아닌지
민생위기 속 국민은 위로 필요
정치의 노세보 효과는 아닌지
민생위기 속 국민은 위로 필요
플라세보 효과는 현재 상황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환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환자에게 처방한 약이 어떤 연유로 작동할지, 그 시기는 언제부터인지 등 증상에 긍정적 변화를 줄 것이라는 의사 설명을 환자가 듣는 자체로 효용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의사의 처방약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면 효과는 더 커진다. 나아가 환자가 세심한 보살핌의 대상이 된다는 느낌과 주변으로부터 진정 어린 도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면 플라세보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 정치의 대국민 설명은 늘 맥락이 없고, 설득력이 없으며, 대중 추수주의에 기반을 뒀다. 돌이켜보면 민생은 나아지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는 선거철의 선언과 구호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정부 정책을 비웃듯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그랬고, 정치권이 눈감아왔던 일부 귀족 노조의 고용 세습에 침탈당한 청년들의 일자리가 그랬으며, 날로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가 그랬다.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그래서 이유가 분명하다. 신뢰를 잃어버려 희망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환자가 부정적이고 나쁜 결과가 예상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는 경우에는 실제로 통증이 심해지거나 병세가 악화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노세보(nocebo) 효과다. 이는 꼭 통증이나 심리적 불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집단 히스테리와도 연결된다. 정치적 선동으로 판정된 광우병 사태가 그랬고, 코로나 초기의 사회적 불안감이 그랬다. 일방의 주장에 의한 근거 없는 소문이 돌 때, 대중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불안과 통증을 호소한다. 사회적 노세보 효과인 셈이다. 그러나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따른 혼란을 책임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 정치가 경제 발전과 불균형을 이루며 후진성을 못 벗어나는 이유다.
인간에게는 모름지기 자연 치유 능력이 있다. 심리적 안정 상태에서 발현되는 뇌와 정신의 자연적 자가 치유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이 치료가 효과 있을 것이다’는 기대와 함께 치료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칭찬과 협력보다 비관과 삿대질로 점철된 진영논리의 결집은 사회적 노세보 효과를 부른다. 국민의 신뢰 기반을 허문다. 거짓된 선동은 유효기간이 짧다. 결속력은 강건하지 않고 느슨하다.
플라세보 효과는 인디언 기우제 같은 주술적 개념이 아니다. 의료계에서 여전히 신약 임상시험의 과정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인간 뇌 속에서 실현되는 정신작용의 일부로 평가받고 있다. 현존하는 고통을 인정하고 치료에 대한 적절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기대야말로 의사와 환자 사이의 꼭 필요한 신뢰 틀이라는 사실은 현대 의학의 결정적 발견이다. 한국 정치는 국민에게 플라세보 효과인가, 노세보 효과인가. 현재로선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오늘도 거리에는 비판과 선동이 가득한 정치 현수막이 즐비하다. 어김없이 봄은 왔는데 국민의 마음은 여전히 혹한이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