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개시될 무렵인 2021년 9월 자신의 휴대전화를 급히 없애려던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의 시도는 지난 8일 검찰의 공소장에 담긴 또 하나의 혐의(증거인멸 교사)가 됐다. 김씨의 시도는 2016년 국정농단 수사 당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자택에서 발견된 메모를 연상시켰다.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돌릴 것’, ‘휴대폰 액정의 특정 지점을 부술 것’
최근 대부분 경찰과 검찰 수사 초기엔 휴대전화를 찾으려는 수사관들과 휴대전화를 없애거나 훼손하려는 피의자들의 숨바꼭질이 격렬하게 벌어진다. 교수 출신의 청와대 수석과 언론인 출신의 사업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PC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춘 휴대전화는 확실한 물증의 보고다. 국정농단 수사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실 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녹음파일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탄 건 유명한 일화다. 이 전화기는 안 전 수석의 수첩과 더불어 ‘사초(史草)’라고 불렸다.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위치정보, SNS 캡처 파일 등 다양한 정보는 압수 즉시 기기의 주인을 압박하는 무기로 돌변한다. 한 경찰 수사관은 “조직폭력배의 협박 사건을 수사할 때 휴대전화 GPS로 피의자의 알리바이를 깬 적이 있다”며 “GPS 기록을 삭제해 증거를 지워도 오히려 그 삭제 부분과 시점이 집중 추궁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완전 삭제는 불가능…“부숴라” 유행
비밀번호 등은 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사이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관계자는 “국내에서 암호가 안 풀리면 해외 업체에 문의해 결과를 기다리기도 한다”면서 “휴대전화에 남은 정보 확보는 시간과 노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암호체계 해제를 위해 검찰은 이스라엘 보안 업체의 포렌식 장비를 쓰고 있고, 경찰 역시 비슷한 전문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물리적 훼손에 성공한면 수사망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한 경찰 수사파트의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한강에 갖다 버리면 우리도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갑자기 전개되는 압수수색에 앞서 휴대전화를 찾을 수 없는 곳에 버리거나 완전히 손상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검찰 수사관은 “요즘엔 휴대전화나 칩의 내구성이 좋아져서 웬만한 충격이 가해져도 외관만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며 “충격이 가해진 저장 장치에서도 남은 정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사관은 “피의자들이 급박한 상황에서 휴대전화를 부수다 보면 메모리칩이 없는 엉뚱한 부분을 파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면 안 전 수석의 방법에 대해선 “전문적인 코치를 받은 것”이라고 반응이 많다. 고열이 일정시간 지속되면 메모리칩에 화학적 변형이 발생해 정보 복구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화제발생 위험이 크다. 휴대전화 자체가 훼손되도 운영체제를 연동해 사용하는 다른 전자기기를 확보해 휴대전화 속 정보를 역추적하는 기법도 있다. 한 검찰 수사관은 “구체적인 방법은 비밀이지만 이런 방법으로 부서진 휴대전화에서 무엇을 지웠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강제로 잠금 해제 위법논란 지속
최근에는 클라우드 서버 이용자가 늘면서 휴대전화 압수수색의 범위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압수수색 대상을 ‘휴대전화’라고 명시한 영장으로 휴대전화와 연동된 클라우드 서버 속 자료를 압수할 수 있느냐가 종종 쟁점이 된다. 대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에 별도로 ‘클라우드 서버’를 명시해야 압수수색할 수 있다는 판단을 분명히 하고 있다.